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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pr 22. 2022

인생의 늪

늪은 모든 것을 잡아당긴다. 늪에 빠지면 그곳에서 다시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늪처럼 모든 것을 잡아들여 더 이상 그곳에서 나오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는 그러한 늪은 없는 것일까? 현재까지 없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나의 삶의 어느 순간에 갑자기 늪이 나타나 나를 통째로 삼켜버리지는 않을까?


  인생의 늪을 스스로 원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우연히 나도 모르게 그러한 늪에 빠질 수도 있고, 정말 사소한 어떤 것이 소위 나비효과를 일으켜 우리를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러한 늪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을 수도 있다.


  양귀자의 <늪>은 어떤 한 평범한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중학교 국사 교사인 김 선생에게 닥친 인생의 커다란 늪에 관한 소설이다. 그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중학교에 발령받아 나름대로 교사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학생들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다만 자신의 주관을 서슴지 않고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기는 했으나 일반적인 상식 차원에서 보면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소신 발언 정도였다. 하지만 시대가 유신정권 말이었다.


 “그것 말고는 어떤 인생 계획도 없었는데. 처음 미국에 가서는 얻는 일자리마다 끝에 헬퍼, 라는 호칭이 붙는 것이었어요. 보조라는 뜻 말입니다. 목수 보조, 주방장 보조, 이발사 보조, 트럭 기사 보조. 그렇게 몇 년을 살다 보니까 내 인생 자체가 누군가의 보조라는 느낌, 그 느낌이 아주 고약하더라구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탕진하고만 있다는 기분 말입니다. 사실은, 지금도 그래요. 나는 지금 햄버거집 주인이지만, 내가 원했던 삶은 정녕 이것이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더 괴로운 것은, 누가 나를 이리로 몰아붙였는지, 그게 무엇인지 원망할 대상도 없다는 것이지요. 누구에게 따질 수도 없어요. 모두 내 죄거든요.”


  국사 시간에 어떤 나쁜 의도 없이 그저 나름대로 자신의 주관을 곁들여 수업을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별것도 아닌 그의 소신 발언은 커다란 삶의 늪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단순한 말 몇 마디가 평생을 잡아 먹는 인생의 커다란 늪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일주일이 지나고 비로소 사건의 윤곽이 밝혀졌다. 예상은 모두 엇나갔다. 김 선생은 유언비어 유포죄로 고발당해서 출근길에 정보기관에 끌려갔다고 했다. 고발자는 학부모였다. 믿을 수 없었지만 사실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고발자는 학생인 셈이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유신 정권에 대해 하는 말들을 무심코 아버지에게 옮긴 적이 여러 번, 고급 공무원이었던 아들의 아버지는 김 선생의 사상이 불온하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르른다. 그러던 중 정보기관에 다니는 친구와 점심을 하다가 역시 무심코 아들의 담임에 대해 몇 마디를 흘렸다. 기관원은 김 선생의 이름과 근무지를 적고, 발언 내용도 수첩에 적었다. 말로 할 때는 별것 아니었던 것도 축약되어 메모될 때는 의미가 심장해지는 법이었다. 김 선생은 일 주일간의 모진 고문을 당하고 풀려났다. 김 선생 집에 다녀온 몇몇 교사들의 표현에 의하면 풀려난 김 선생의 모습은 한마디로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한 김 선생의 소신 발언은 담임을 맡았던 한 학생의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것이 학생의 아버지가 고급 공무원인 바람에 정보기관에 알려지게 된다. 극히 개인적인 사소한 발언조차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던 시대였던 것이 문제였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정보기관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풀려나 다시 전에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 예전의 모습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려 했지만, 한 번 빠진 그 늪은 그의 인생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김 선생은 참아낼 수 있었는데, 선생님을 아버지에게 밀고한 것이 되어버린 학생은 이 상황을 견뎌낼 수 없었다. 밀고자가 되어버린 소년, 교사들과 친구들의 수군거림, 다리를 절뚝이며 나타났지만 한마디 책망도 없이 여전히 정다우려고 노력하는 담임선생님. 열다섯 살의 소년이 감당하기로는 너무 무거운 현실이었다. 그래서 소년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쪽을 택했다. 8층 건물의 옥상에서 몸을 날린 소년은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피투성이 호주머니에는 담임선생님에게, 오직 담임선생님에게만 간절히 용서를 구하는 유서가 들어 있었다. 선생님,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어요.”


  담임선생님이 정보기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게 된 것이 오로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김 선생 담임 반의 학생은 엄청난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은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 몰랐다. 제자의 죽음 앞에서 김 선생은 말을 잃었다. 장례가 치러지기까지 사흘간 학생들이나 교사들은 소년의 주검이 놓여 있는 병원 영안실을 수시로 드나들었지만, 그는 피투성이 유서만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을 뿐 그 어린 영혼 옆에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그때, 오 선생은 느끼고 있었다. 그 사흘 동안 김 선생은 얼마나 부서지고 있는가를. 굴욕과 고통의 고문조차도 건드리지 못한 한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철저하게 부서지고 있는가를 옆자리의 오 선생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학생의 자살은 김 선생을 완전히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의 한복판으로 끌려들어가게 해버리고 말았다. 그의 나머지 인생은 이제 그 늪 속에서만 보내야만 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고, 원하고 바라지도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고 만 그 운명은 이제 돌이킬 수조차 없었고, 김 선생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그의 남은 인생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아예 그 늪에 빠져 모든 것이 끝나버리고 마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를 정도의 삶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들의 한 줌의 재가 되어 한강에 뿌려지고 나서 얼마 후, 이번에는 아들의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운전하던 자동차가 과속인 상태에서 전신주를 들이받아 생긴 일이었다. 그것이 우연한 사고인지 아니면 의도된 사고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말이 있었지만, 그것은 하늘만이 알 일이었다.”


  김 선생이 빠진 그 늪은 그것으로도 모자라 학생의 아버지까지 삼켜버렸다. 김 선생은 어쩌면 자신이 피해자였으나, 하늘을 바라보고 살 수조차 없는 가해자의 처지가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 두 사람의 생명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김 선생은 그 늪에서 더 이상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 늪은 김 선생의 나머지 모든 인생까지 삼켜버렸다.


  우리도 김 선생처럼 그 몸서리쳐지는 삶의 늪에 언제 빠질지 알 수 없다. 아니 이미 그러한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그저 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그렇게 잔인하게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갈 수도 있다. 내가 바라지 않더라도, 언제 어느 때 그러한 늪이 나에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이미 그 늪에 빠져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것을 해야 하는 것일까? 만약 앞으로 우리에게 그러한 늪이 기다리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인생의 커다란 늪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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