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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pr 22. 2022

표범이 되어가는 걸까?

https://youtu.be/xKo9xIqW1eQ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무엇을 찾아 그 높은 곳까지 간 것이 아니다. 가다 보니 거기에 다다른 것이다. 표범은 따스한 먹을 것이 풍부한 넓은 평원에서 사는 게 당연하다. 항상 그것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표범이 만년설로 뒤덮인 그 킬리만자로의 높은 곳으로 가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표범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 흘러 만년설이 덮인 킬리만자로의 높은 그곳에 간 것은 아닐까?


  우리의 삶은 어디로 갈지 모른다. 자신의 인생일지라도 본인이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 그렇게 가지는 않는다. 원하지 않았던 일들이 우리에게 닥치고 그러는 가운데 내가 생각지도 않았던 곳으로 우리 인생은 흘러간다. 자신이 인생을 본인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을 넘어 몽상일 뿐이다.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은 이 지구 상에 결단코 단 한 명도 없다.


  삶은 우리가 예기치 않은 곳으로 흘러간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 해도 안 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의도하지 않았던 일들이 우리의 삶에 파고들어 그동안 꿈꾸었던 우리의 아름다운 일상이 다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사랑을 찾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만, 그 사랑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다. 사랑이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채워주는 것일까? 사람이 변하듯 사랑도 변하는 것은 아닐까?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변하지 않는 사랑이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변하기에 사랑도 변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사랑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어디에 운명을 걸어야 할까? 운명을 걸어야 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운명을 걸어 치열하게 살았지만 그 끝이 보장되는 것이기는 할까?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만큼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따스한 대평원에서 마음껏 달리던 아프리카의 표범도 길을 잃어 헤매고, 먹을 것이 떨어져 굶주림에 고통받고, 폭풍우와 가뭄에 견디지 못해 평원을 떠나야만 했다.


  그렇게 흘러 흘러 부족할 것 없을 것 같던 그 표범도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킬리만자로의 산속으로 흘러들어가게 된 것은 아닐까? 우리도 그렇게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 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그것을 위안해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사랑 때문이라고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만큼 고독해진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내 청춘에 건배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 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 되리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을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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