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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pr 30. 2022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은퇴 후 작은 카메라 가게를 운영하는 토니(짐 브로드벤트), 이혼은 했지만, 전처와 가끔씩 만나고, 딸과 그리 사이는 좋지 않지만 언제든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어느 날 대학 때 사귀었던 베로니카(샬롯 램플링)의 엄마인 사라(에밀리 모티머)에게서 편지가 오는데, 그녀는 토니에게 약간의 돈과 유품을 남긴다. 

유품을 받기 위해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는데, 그 유품을 베로니카가 가지고 있고, 그것은 당시 친구였던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임을 알게 된다.

오랜만에 베로니카를 만나게 된 토니는 그녀를 만나 반가웠지만, 베로니카는 그를 차갑게 대하고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은 자신이 불살라 버렸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베로니카는 토니에게 한 통의 편지를 주고 자리를 떠난다. 토니는 그 편지를 읽고 자신의 옛날 일들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왜곡되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충격을 받게 된다.

자신이 베로니카와 헤어진 후 에이드리언으로부터 베로니카와 사귀게 되었다는 편지를 받고 토니는 상관없다는 엽서를 보낸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엽서가 아닌 긴 편지로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 대해 입에도 담지 못할 정도의 증오와 저주의 내용이었다. 

그 편지의 저주가 실현된 것이었을까? 어느 날 베로니카의 뒤를 미행하던 중, 베로니카가 한 장애인 청년과 만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토니는 그 장애인 청년을 홀로 뒤따라가 알아보니, 그 청년은 에이드리언의 아들임을 알게 된다. 

에이드리언은 베로니카의 아들이었을까? 왠지 자신에게 유난히 친절하게 잘해주었던 베로니카의 엄마가 생각이 나는데,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 청년은 베로니카의 엄마와 에이드리언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토니의 친구인 에이드리언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베로니카는 자신이 사귀었던 에이드리언과 엄마의 아들, 즉 자신의 친동생을 돌보아 주고 있었던 것이다. 

토니 역시 베로니카와 사귈 때 그녀의 엄마에 대해 어떤 사적인 감정이 있었고, 그러한 감정은 에이드리언에게도 같이 작용했는지, 아니면 자신 편지의 저주대로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에게 평생 잊히지 않을 상처가 되는 사건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은 이러한 과거의 사실들로 가득차 있었고 에이드리언을 사랑했던 베로니카는 그 상처의 아픔을 감당하기 어려워 에이드리언이 죽은 후 그 일기장을 불질러 버렸던 것이다.

자신의 저주가 실현된 것이 아닐지라도 자신의 편지로 인해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이 너무나 커다란 마음의 상처가 되었고, 그 상처로 인해 그들의 인생은 너무 얽혀버려 그 이후 그들이 걸어가야 했던 인생의 길이 결코 순탄하게 되지 않았음을 토니는 알게 된다.

토니는 자신의 기억이 오로지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덧칠되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당시 비록 순간적인 감정으로 인한 사소한 실수였을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그러한 행동이 얼마나 엄청난 일로 비화되었는지를 깨닫고 그동안 살아왔던 그의 인생의 길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에게 했던 것처럼, 또 다른 사람인 전처와 딸에게도 비슷한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토니는 스스로 자기의 삶의 태도를 바꾸어 나가려고 노력한다. 비록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더라도, 과거에 그가 한 잘못된 일들과 실수를 돌이킬 수는 없겠지만, 이제부터라도 더 이상 다른 이들에게 아픔을 주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토니는 이혼한 전처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고, 딸에게도 아빠로서 최선의 모습으로 도움을 주려는 진심을 보인다. 비록 많은 것들이 지나갔지만, 현재의 시간이라도 소중히 보내기 위해 토니는 그의 일상을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사무적으로 대했던 집배원 청년에게 따뜻한 커피도 대접하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마음이 있는 대화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토니는 베로니카에서 진심 어린 사과의 편지를 쓴다.

“이게 과거에 대한 향수인지 괴로움인지 생각해 봤어. 아무래도 향수인 것 같아. 난 마가렛과 살던 시절과 수지가 태어났던 날을 떠올리고 학교 친구들과 살면서 처음 춤을 추어봤던 여자와 등나무 아래 서서 몰래 건네던 인사와 에이드리언이 말하던 역사의 정의와 내 삶에 일어났던 모든 일을 떠올려봤어. 내가 의도한 일이 얼마나 적었는지도. 나는 승자도 패자도 아니야. 상처를 기피하며 그것을 생존능력이라 부르는 사람이지. 우리의 인생이 어쩌다 엉켜버렸는지 생각하고 있어. 좋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 와 돌아보면 그 순간 짧게나마 수많은 감정이 밀려와 당신이 어찌 사는지 몰랐던 건 미안해. 이 미련한 늙은이에게 가르쳐줄 것이지.... 어쩌면 진작 가르쳐 주었어도모르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많은 것을 왜곡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해석하거나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관점에서만,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만, 본인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믿으며 그렇게 우리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나의 태도가 삶을 왜곡시키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진실되지 못한 채 엉켜 버려 돌이킬 수 없는 경로로 그렇게 삶이 흘러가게 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삶의 여정에서 그리 많지 않다. 나 자신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그로 인한 삶의 과정은 우리 마음대로 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많은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과 나 자신의 주관만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나 자신을 위해 기억을 왜곡하고 덧칠하며, 현실에 주어진 일들을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나의 생각대로 느낌대로 감정대로, 내가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주위의 있는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 스스로 객관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기에 생기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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