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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03. 2022

아카시아를 먹던 때

https://youtu.be/G-YIfdPDUDg


닿을 수 없다는 곳이 

있다는 것은 

아픔 그 자체인지도 모릅니다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존재는 그렇게

아픔으로 체념으로

채워져 가는가 봅니다      


어쩌면 그러한 것들이

세상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만들지는 모르나     

 

깊어가는 이 밤에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야,

  4월이 어느새 지나가고 5월이 되었어. 5월이 되면 나는 그냥 아카시아 생각이 나. 매년 이맘때면 어릴 적 집 바로 뒤에 있던 산에 올라가 아카시아 냄새 흠뻑 마시며 손으로 아카시아를 따 먹던 일이 생각나곤 해.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모든 것이 좋고 행복했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우리는 지식이 늘어나고 좀 더 많은 것을 안다고 해서 더 많이 행복해지는 것 같지는 않아. 순수한 마음으로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기도 해.


  예전에는 마음만 먹으며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노력하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모두 다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하지만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한 것들이 나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아픔을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거야. 


  그래서 그런지 살아가면서 더 많은 것들을 바라게 되는 것 같지는 않아.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더라도 그것이 나의 인생에서 엄청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러는 것인지도 모르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들도 줄어드는 것 같아. 물론 예전에도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나의 살아있음을 느껴본 적이 그리 많지도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점점 작아져 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내 주위의 사람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들인지 마음속 깊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 삶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일 거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작아지는 나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지는 것도 사실이야. 5월이 되어 아카시아를 따 먹던 생각이 나는 오늘 같은 밤에도 나도 모르게 나의 내면 한쪽에서는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기도 해. 


  깊어가는 이 밤에 너에게 글을 쓰면서 바흐가 생각이 났어. 다른 것보다 오보에 소리가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냥 오늘 밤에 어울리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핸드폰으로 듣기에는 아까워서 블루투스를 켰어. 오보에의 선율이 어려움 없이 나의 귀를 넘어 마음속으로 들어오고 있어. 이 음악이 그나마 나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 주고 있어. 


  바흐가 나에게 오보에를 통해 말하는 것 같아. 많은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아름다운 5월인데 향기로운 아카시아 냄새를 실컷 맡으라고. 시간이 되면 예전에 올랐던 산에 가서 어릴 적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추억해 보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 


  바흐의 권유를 받아들여 이번 주말에는 집 근처에 있는 산에라도 올라가서 아카시아를 따 먹지는 못하더라도 실컷 그 향기는 맡고 올 생각이야. 너도 같이 가면 얼마나 좋을까? 예전에 함께 산에서 뛰놀며 아카시아를 누가 더 많이 먹나 시합도 하고 그랬었는데.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 새삼 느껴. 


  네가 많이 생각나는 5월의 이 밤 너에게 바흐의 오보에 협주곡을 선물로 보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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