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공간에는 무한대에 가까운 물체들이 있다. 이러한 무수한 물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성질이 바로 관성(慣性)이다. 관성이란 쉽게 말해 일관된 성질을 말한다. 일관된 성질이란 어떤 물체가 정지하고 있다면 일관되게 계속 정지하려고 하고, 어떤 속력을 가지고 운동을 하고 있다면 그 속력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운동을 계속하려고 하는 성질을 말한다.
하지만 이 관성은 조건이 필요하다. 외부의 어떤 힘도 이 물체에 작용되지 않았을 때 우주 공간의 모든 물체들이 관성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만약 이 조건이 만족되지 않으면 관성이 깨지게 된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가 관성이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억지로 이 관성을 계속 유지하려는 고집을 부리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 중의 하나가 이 관성과 깊게 관련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뉴턴의 운동법칙 중 제1 법칙인 관성의 법칙이다. 관성의 법칙이란 쉽게 말해 외부에서 어떤 작용이 가해지지 않는다며 물체는 항상 그 운동 상태를 유지한다는 법칙이다. 정말 어떻게 보면 간단하게 보이는 이러한 것을 법칙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과학의 위대함이 바로 이런 곳에 있다는 것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자연은 생각보다 엄청 단순하다. 그러한 단순함이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법칙이 단순하지 않고 너무 복잡하다면 우주는 엄청난 혼란 속에서 어떤 질서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관성은 또한 외부에서 그 물체의 운동 방향이나 속력에 변화를 주려는 외부 작용에 대해 저항하려는 속성이기도 하다. 즉 자신의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서 외부에서 어떤 충격이 주어지면 그것을 버티어 내려고 하는 성질을 말한다는 것이다. 관성이 클수록 크게 저항하게 되며 외부의 영향이 자신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학이란 어떠한 양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측정하여 이를 정량화하지 못한다면 이는 과학이 아닌 소설에 불과할 뿐이다.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무한대에 가까운 그 물체들의 관성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 물체의 질량을 측정하면 된다. 물체의 질량은 그 물체 자체의 관성을 바로 쉽게 보여주는 물리량이 된다.
우리가 질량을 측정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질량과 관성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바로 비례관계이다. 질량이 클수록 관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질량이 가벼운 물체에 외부에서 어떤 힘으로 작용하는 것과 질량이 무거운 물체에 외부의 힘을 작용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어떤 물체가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에 대항하여 더 커다란 저항력을 나타낼까? 당연히 무거운 물체이다. 질량이 무거울수록 외부의 힘에 저항하는 경향이 크게 나타나 자신의 현재 상태를 잘 변화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기에 당연히 질량이 큰 물체일수록 관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수많은 물체들이 있지만, 관성을 유지하려는 본래의 성질에도 불구하고 관성이 수시로 깨지면서 정지상태나 등속력으로 움직이는 물체보다는 그렇지 않은 물체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심오한 진리라 할 것이다. 왜 그럴까? 자연은 변화하며 조화를 이루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새로운 것이 탄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주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주 전체는 진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미래의 확정된 목표가 있는지는 몰라도 우주는 관성이 있으면서도 그 관성이 항상 깨지는 가운데 새로운 모습으로 나아가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우주의 가장 커다란 비밀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질량이 많다는 것은 우리의 지식, 편견, 선입견, 독선, 고집, 필요 없는 자존심으로 꽉 차 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새로운 더 나은 모습으로의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항상 과거에 얽매인 채,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나고 똑똑하다는 착각 아래 그 자리만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고 마는 것이다. 나의 관성을 깨뜨리려는 노력이 바로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해 나가려는 우주의 커다란 비밀과는 일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을 지키면서도 필요한 때에는 언제든지 그 관성을 스스로 깨뜨릴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삶의 법칙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