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 브로이는 프랑스의 명문 귀족인 공작 집안 출신이었다. 아마 역대 과학자 중 가장 높은 세습 귀족 출신일 것이다. 그에겐 평생 먹고살 걱정 하나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신에게 이미 많은 재산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과학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과학을 위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가지고 몰입을 했고 24살 되는 해, 소르본느 대학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였다. 하지만 그 논문을 심사하던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이 학위를 줘야 할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자신들도 그 논문을 판단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당시 소르본느 대학의 물리학 교수들이란 세계 최고의 석학들이었다. 왜 그 논문을 판단할 수가 없었던 것일까?
그 내용 자체가 당시에는 너무 파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논문 심사 위원들조차도 예전에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였다. 만약 이 논문을 통과시켰는데 잘못된 내용이라면 심사위원들 자신들의 무능함이 알려지는 것이고, 통과시키지 않았을 때 나중에 옳았던 것으로 판명이 된다면 그 또한 그들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게 될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심사위원들끼리는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 논문을 어떻게든 결정을 내려줘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었기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에게 이 논문을 보내고 자문을 구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그 논문을 보자마자 바로 현대 물리학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는 논문이라 말하며, 이 논문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너무나 멍청한 짓이라고 통보해 주었다. 심사위원들은 자신들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지만, 아인슈타인의 의견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드 브로이에게 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수여한다. 그리고 드 브로이는 자신의 이 박사학위 논문으로 192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이 논문의 내용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가 알고 있었던 전자는 질량과 전하를 가지고 있는 입자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입자보다는 파동의 성질을 가질 수도 있다는 그전에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가설이었다. 이 가설이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없기에 심사위원들은 고민했던 것이다. 가설은 실험으로 증명되어야 하지만, 그때까지는 그런 실험은 전무했던 것이며 맞을지 틀릴지도 모를 이 가설에 대해 판단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가설은 3년 후 데이비슨과 거머가 전자를 가지고 회절 실험을 해서 옳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이들 또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만약 심사위원들이 이 논문을 통과시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할 수 있는 논문을 통과시키지 못한 책임으로 스스로라도 자신들의 교수직을 사임했어야 했을 것이다.
우리들은 흔히 어떤 현상들을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고착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빛이 파동이냐 입자냐 하는 논쟁 과정에서 뉴턴은 입자라고 주장을 했고, 호이겐스는 파동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들은 많은 논쟁 끝에 한쪽이 옳다는 것을 결정해야 하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많은 실험 끝에 빛은 파동이라는 의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뉴턴 이후 빛은 파동이라는 것이 옳다는 것으로 고정되어 버렸다. 하지만 1905년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 실험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200년이 넘은 뉴턴의 입자론을 부활시켜 빛은 입자의 성질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 후로 다시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의 논쟁이 다시 일어났지만, 결국 빛은 경우에 따라 입자성을 띠기도 하고 파동성을 띠기도 하는 두 개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를 빛의 이중성이라고 한다.
드 브로이의 천재성은 우리가 당연히 입자라고만 생각한 전자도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것에 있었다. 지금 보면 엄청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당대엔 상상하기 힘든 아이디어였다. 소설처럼 보였던 그 아이디어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자연의 세계의 문을 열어주게 되었다.
전자도 입자의 성질뿐만 아니라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이 아이디어는 현대 과학의 가장 위대한 업적인 양자역학의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의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 위대함은 단순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드 브로이의 위대함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드 브로이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시야를 거부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정적인 관념과 익숙한 관습은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세계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 일지 모른다.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내가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빛이 파동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입자성도 있었다. 전자는 입자인 줄 알았는데 파동의 성질도 있었다. 우리 주위에 내가 생각하기에 나쁜 사람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너무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관점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된 인식이 아니다. 오직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사실 자체이다. 그 사람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나의 생각으로 판단을 해 버린다면, 전자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성질인 파동성을 전혀 볼 수 없게 되고 마는 것이다. 내가 먼저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그 진실함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마는 것은 우리 삶의 또 다른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드 브로이는 그런 것을 놓치지 않았기에 과학의 역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기 위해서는 나라는 독선과 선입견 그리고 고정관념을 탈피하고서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 사람이 정말 보석 같은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더 아쉬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