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근적 자유성

by 지나온 시간들

우주의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는 가운에 핵이 존재하고 그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다. 핵의 크기는 정말로 작아 약 10의 마이너스 15승 미터 정도 된다. 핵 안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다. 양성자는 업쿼크(up quark) 두 개와 다운쿼크(down quark) 한 개로 이루어져 있다. 중성자는 다운쿼크 두 개와 업쿼크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중성자는 전하량이 제로이기 때문에 전기력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양성자는 양전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기력의 영향을 받는다.


핵 안에 양성자가 많아지면 어떻게 될까? 전기력은 같은 전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서로 밀고, 다른 전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서로 잡아당긴다. 따라서 핵 안에 있는 양성자는 양전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밀어내는 힘인 척력이 존재한다. 그런데 문제는 핵이라는 공간은 극히 작은 공간이다. 이렇게 작은 공간에 양성자가 많아지면서 서로 밀쳐내는 힘이 커지게 될 수밖에 없게 되어 불안정해진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의 발 디딜 틈도 없는 공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척력이 존재하는 핵이라는 공간에 양성자가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양성자끼리 서로 밀어내는 척력보다 더 큰 힘으로 양성자를 묶어주는 다른 힘이 존재하면 된다. 이런 힘을 강력이라고 한다. 강력은 핵이라는 극히 좁은 공간에 있는 양성자끼리 작용하는 전기력보다 훨씬 큰 힘으로 양성자에 작용하여 양성자가 핵 안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럼 만유인력은 없는 것일까? 양성자는 질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인력이 작용한다. 하지만 양성자끼리의 전기력이 만유인력보다 10의 마이너스 39승 정도나 크므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강력이라는 힘의 성질이다. 자연에는 만유인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이 존재하는데 네 가지 다른 힘이 있다는 것은 그 힘의 성질이 각각 다르다는 의미이다. 약력은 엔리코 페르미가 베타붕괴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었는데 그 존재가 실험적으로 증명되어 페르미는 이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약력은 우리가 논의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중요한 사실은 바로 양성자와 중성자를 구성하는 쿼크끼리의 상호작용이다. 양성자나 중성자 안에는 쿼크 세 개가 존재하는데 이 공간은 핵보다 훨씬 작다. 이렇게 극히 작은 공간에 어떻게 쿼크가 존재할 수가 있을까?


강력은 만유인력이나 전자기력에 비해 아주 다른 성질이 있다. 만유인력이나 전자기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그 힘이 커지고 멀어질수록 작아진다. 즉 핵 안에서 양성자가 가까이 있을수록 전자기력의 힘은 커질 수밖에 없다. 만유인력도 커지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그 크기가 워낙 작아 있으나 마나 할 정도이다.

강력은 이와는 반대이다. 가까울수록 상호작용의 영향은 별로 미치지 않고 멀어지면 커진다. 강력의 특징, 즉 전기력이나 만유인력과는 반대로 거리가 가까울수록 작아지고 멀수록 커지는 성질을 흔히 점근적 자유성(asymtotic freedodm)이라고 한다. 이 성질이 바로 핵심이다. 가까워질수록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이 강력의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멀어지는 강력의 크기가 커지면서 양성자 밖으로 쿼크가 나가지 못하도록 하여 서로 가까이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렇게 해서 양성자라는 좁은 공간에 쿼크가 존재할 수 있다.


쿼크는 양성자나 중성자 안에서 자유로운 점입자처럼 행동한다. 쿼크들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자유도가 커진다. 둘 사이의 거리가 0이 된다면 완벽한 자유로운 입자가 된다. 하지만 쿼크들 사이의 거리는 어느 한계 이상 멀어지지는 않는다. 이로 인해 쿼크는 양성자 안에서 존재할 수 있다. 가까울수록 자유도가 커지는 이러한 현상, 즉 점근적 자유성을 연구한 데이비드 그로스, 프랑크 윌첵, 데이비드 폴리처는 이 연구로 200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점근적 자유성은 우리에게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주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가까울수록 서로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멀어지려고 하면 더 많은 힘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 즉 친해지고 더 좋은 관계가 될수록 서로에게 집착하거나 기대하거나 구속하기보다는 서로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간섭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도 믿어 주고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편하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반대로 멀어질수록 더 많은 마음을 써야 한다.


서로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하고 다르다고, 나에게 잘 대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신경을 쓰지 않고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 많은 배려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살다 보니 별로인 것 같고 성격 차이도 너무 심하고 생각하는 것도 너무 다르고 해서 그만 끝내고 이혼하고 다른 사람하고 결혼해서 살아보니 다시 시간이 지나 새로 결혼한 사람도 전과 다른 것 없어서 또 이혼하고, 또 결혼하고 그러다 보니 나중에 내린 결론은 별다른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어차피 특별한 사람은 없다. 다 비슷한 사람인 것이 진리다. 바꿔도 소용없다. 왜냐하면 양성자 안에는 업쿼크하고 다운쿼크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쿼크는 다 같고 다운쿼크도 다 같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쿼크끼리 점근적 자유성을 발휘하듯 우리 사람들도 점근적 자유를 이해하고 허용하는 것이 진정을 지혜로운 것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간섭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면 시간이 지나 서로가 정말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 만약 어느 순간에 싫어서 멀어지게 되면 기분 내키는 대로, 감정 나오는 대로, 생각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때 서로에게 더 배려를 해서 멀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로 강력의 핵심이다. 서로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강력 특히 점근적 자유도를 우리 생활에 적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것은 사실 만유인력이나 전기력보다 너무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최근에 와서야 알려졌고 물리학계에서 난제로 꼽혀왔다. 이를 해결함으로써 자연에 존재하는 전자기력, 약력, 강력이 통일될 수 있는 양자색역학(Quantum Chromo Dynamics)의 기반이 마련되어 아인슈타인 꿈꾸었던 대통일이론으로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로스, 윌첵, 폴리처가 노벨 물리학상의 수상 의미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우리 생활에 점근적 자유성을 이해하고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롭고, 혹시나 무슨 일이 있어 멀어져 가려는 경우 다투지 말고 서로 마음을 더 나누어 다시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점근적 자유도를 이해하고 풀어내는 사람이 바로 사랑의 노벨상을 탈수 현상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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