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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11. 2022

우리도 베니스 상인이 아닐까?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인간의 미움과 무시 그리고 편견이 증폭되어 말도 안 되는 일로 비화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베니스의 상인인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로부터 부잣집 딸인 포셔에게 구혼하기 위해 3,000두카트에 해당하는 돈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안토니오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는데, 샤일록은 안토니오에게 이자를 받지 않는 대신, 날짜 안에 돈을 갚고 그렇지 못하면 안토니오의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살 1파운드를 제공한다는 증서를 받는다. 

샤일록은 왜 안토니오에게 돈을 못 받으면 살 1파운드를 받는 조건을 제시했을까?

“샤일록: 아첨하는 세리를 꼭 닮았군! 그자가 기독교인이라서 딱 질색이야. 더군다나 미천하고 어리석게도 돈을 공짜로 빌려줘서 이곳 베니스에서 우리들의 대금업 이자율을 떨어뜨려 놓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그가 어려움에 처하기만 하면 쌓인 원한을 톡톡히 갚아 주어야지. 그는 성스러운 우리 민족을 미워하고, 심지어 상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에서 내 자신과 내 사업과 나의 정당한 이득을 고리대금업이라고 욕해댄다. 내가 그런 자를 용서한다면 내 유대 종족에 천벌이 내릴 것이다!”

“안토니오 : 여보게 비사니오, 이거 좀 보게. 저 악마가 제멋대로 성경을 잘도 인용하는군. 성경을 내세우는 사악한 영혼은 웃는 얼굴을 한 악당이나 마찬가지야. 속은 썩었는데 겉만 번질거리는 사과처럼 말이야. 아 가짜가 겉모습은 이렇게도 그럴싸하단 말인가! 난 앞으로도 당신을 그렇게 부를 거고 또 그대에게 침을 뱉을 거고, 그대에게 발길질을 할 것이오.”

아무런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의 피해를 원하는 경우는 없다. 샤일록이나 안토니오 둘은 서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사이가 좋을 수 없었다. 기독교인인 안토니오와 유대교인 샤일록 사이에는 종교라는 또 다른 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서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 편견 또한 그들을 다투게 할 수밖에 없었다.

안토니오는 자신의 상선이 돌아오면 충분히 돈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기로 예정되었던 상선이 모두 침몰했다는 소식을 전해진다. 설상가상으로 샤일록의 딸 제시카가 아버지의 재산을 훔쳐 바사니오의 친구인 로렌조와 도망가고 이에 정신적으로 괴로웠던 샤일록은 안토니오에게 계약대로 살 1파운드를 요구한다. 

이리하여 안토니오, 바사니오, 샤일록은 재판을 벌이게 되는데, 재판관은 샤일록에게 자비를 베풀어 돈으로 빚들 받아 가라고 제안하지만, 샤일록은 이를 거절한다. 바사니오 또한 안토니오가 빌린 돈의 세 배를 주겠으니 하지만 샤일록은 계약서대로 할 것을 주장한다. 

“샤일록 : 죽는 한이 있어도 계약서대로 하겠소! 나는 법대로 내 계약서에 명시된 벌금과 위약금을 원하오.”

샤일록은 나름대로 안토니오에 대한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돈으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었지만, 그가 받은 상처는 안토니오에 대한 미움으로 인해 치유되지 못했다. 

이에 재판관은 계약서는 정당하며 이를 지키지 못했으므로 샤일록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샤일록이 칼을 들고 안토니오에게 다가가 살을 베려는 순간, 재판관은 샤일록에게 계약서에는 오로지 살만 적혀 있을 뿐, 피라는 단어는 없으니 살을 가져가되 피를 내서는 안 되며,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샤일록은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사형에 처해진다고 선언한다. 

“포셔 : 잠깐 기다리시오, 얘기가 끝나지 않았소. 이 계약서에 따르면 당신은 피를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오. 살 1파운드라고만 거기엔 쓰여 있소. 그러니 계약에 따라 살 1파운드를 떼어 가시오. 그러나 살을 떼어내느라고 기독교인의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리는 날에는 당신의 땅과 재산이 베니스의 법률에 의해서 국가의 소유로 몰수될 것입니다.”

샤일록은 어떻게 살만 도려내고 피를 흘리지 않게 할 수 있냐고 반문하지만, 재판관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엄격하게 법을 적용한 것이라 말한다. 게다가 정확하게 1파운드여야 하며,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으며 안된다고 말한다. 

결국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살을 포기하고 돈으로 받아 가겠다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지만, 재판관은 이미 판결을 났으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고 한다. 

“안토니오 : 공작 각하와 법정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좋다면 그의 재산의 절반을 몰수하지 않고 벌금형만 내려 주셨으면 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제가 위탁하고 있다가 저 사람이 죽게 되면 얼마 전에 그의 딸을 훔친 그 양반에게 그 재산을 양도하는데 그가 동의한다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두 가지 조건이 더 있습니다. 하나는 이러한 호의의 대가로 그가 즉시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죽을 때 전 재산을 그의 사위 로렌조와 딸에게 양도한다는 양도증서를 이곳 법정에서 쓰는 것입니다.”

결국 샤일록은 패소하여 재산의 절반은 국가에 몰수당하고 나머지 절반은 안토니오에게 피해 보상으로 넘겨주게 된다. 안토니오는 재판관에게 재산몰수형을 철회하도록 간청하고, 자신이 피해 보상으로 받을 샤일록의 재산 절반도 샤일록의 딸 제시카가 로렌조와 결혼하는 자금으로 주겠으니, 대신 샤일록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죽은 뒤 재산을 제시카와 로렌조에게 상속할 것을 약속하게 한다. 이에 샤일록은 할 수 없이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재판장을 힘없이 걸어 나온다. 

기독교인이었던 안토니오의 유대인 샤일록에 대한 편견과 무시는 샤일록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었고, 이 상처는 미움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미움이 돈을 매개로 한 복수를 낳게 만들었다. 안토니오나 샤일록이 서로 상대를 조금만 더 인정했더라면 그러한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판에서 안토니오가 샤일록을 개종시키고 이겼지만, 그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 아닐 것이다. 자신이 갚아야 할 빚도 갚지 않은 채 그 사람의 인생을 망하게 한 것은 결코 성공이 아니다. 재판에 이겼어도 당연히 안토니오는 샤일록의 빚을 갚아야 했다. 

상대를 일방적으로 허물어뜨리는 것이 절대 승리라고 할 수 없다. 당장은 좋을지 모르나 그 또한 나중에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다. 샤일록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무시한 사람이라고 하여 미움과 복수로만 그를 대했기에 그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미워한 것으로 그치고 더 이상 복수를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변하지 않는 아집이 그의 삶을 허물어뜨린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별것도 아닌 것으로 인해 오해하고 미워하고 증오하다 인생의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는 경우가 있다. 자아가 강할수록 그런 경향이 크다. 이는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기에 생긴다. 다른 사람의 형편을 조금만 더 생각한다면, 그의 사정을 조금만 더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훨씬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안토니오나 샤일록 같은 베니스의 상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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