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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15. 2022

핵소 고지

 데스몬드 도스는 미군 역사상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자였다. 그는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신자였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의 세계 2차 대전 참전 확대로 데스몬드 역시 1942년 1일 입대하게 된다. 


  <핵소 고지>는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한 데스몬드 도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했다던 세계 제2차 대전에서 집총거부를 하는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데스몬드(앤드류 가필드)는 군인이 되어서도 살인 금지에 대한 계명과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고자 했다. 그에게 있어서 교리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진리였다. 훈련 과정부터 그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 무기인 총을 절대 손으로 들지 않았다. 훈련이나 전쟁에서 다른 일을 할 수는 있어도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행위는 거부했다. 안식일에는 주말 훈련도 거부했다. 


  그는 곧 그가 속한 부대의 최고 문제아가 되었다. 동료들과 상관은 여지없이 그를 가혹행위를 비롯한 커다란 고통으로 몰아세웠지만,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군사 법정에 서게 된다. 


  데스몬드가 선 군사 법정에 그의 아버지가 홀연히 나타난다. 그의 아버지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전투에 참전했고, 수많은 전우들을 잃었다. 그때의 정신적 충격은 그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고, 거의 반폐인이 되다시피 했었다. 전쟁이 끝나 집에 돌아왔어도 폭력적인 생활이 이어졌고,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어릴 때부터 보아온 데스몬스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으려 종교에 귀의하였고, 집총거부에 대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데스몬드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워싱턴 DC의 군 수뇌부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현역 준장인 군수 사령관 머스그로브를 만나 아들이 집총은 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군대 의무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머스그로브 군수 사령관은 세계 1차 대전 당시 데스몬드의 아버지와 전투 현장에서 함께 생사를 같이한 동료였었다. 


  이에 데스몬드는 집총을 하지 않는 대신 전투 현장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이후 데스몬드는 총을 전혀 들지 않은 채 전쟁의 한 복판에서 부상당한 동료들을 응급처치하고 후송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다. 


  데스몬드가 속해 있었던 부대는 미 육군 제77보병사단으로 미군 최정예부대 중 하나였고, 마침내 핵소 고지(Hacksaw Ridge)로 임무를 부여받아 가게 된다. 이곳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오키나와 전투의 최대 격전지였다. 살아남을 확률이 거의 없는 이곳 전투 현장에서 데스몬드는 총을 들지도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임무를 철저히 수행한다. 총알과 포탄에 의해 수없이 죽어 나가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총알이 날아다니는 그 전투 현장에서 데스몬드는 사력을 다해 동료들을 구하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집총도 하지 않은 채 데스몬드는 생사가 오가는 그 위험한 전투 현장에서 무려 75명의 동료들의 목숨을 구해내게 된다. 데스몬드의 철저한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그들 대부분은 그 전장에서 세상을 떠날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훗날 이 사실이 군 수뇌부에 알려져 데스몬드는 미국 최고 훈장 중 하나인 명예 훈장을 수여받는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한다는 것은 실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데스몬드 자신도 그 주장이 어떠한 상황을 몰고 올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청난 파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자신에게 어떠한 압력이 내려질지 본인도 충분히 인식하였을 것이다. 사회의 인습과 관습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양심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논란은 아마 영원히 계속될지 모른다. 우리나라도 종교에 의한 집총거부가 얼마 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결정되어 대체 복무가 가능해졌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데스몬드의 자기 양심에 따른 용기는 실로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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