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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24. 2022

나이가 들어서 좋은 것들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겪게 됩니다. 원하지 않았던 일들도, 피하고 싶었던 일들도, 어쩔 수 없었던 것들도, 세월이 흐르며 그렇게 나에게 다가와 나를 흔들어 놓고 지나가 버렸습니다.


  물론 좋았던 일들도, 기쁨의 순간도, 성취를 느꼈던 시간도, 행복했던 일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삶에 대해 더 깊게 생각했던 것은 힘들고 아팠던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나이가 들어버렸습니다. 누구는 나이가 들어 서운하다고 하지만, 좋은 것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요즘입니다.


  나이가 들어 좋은 것 중의 하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나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그러려니 하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동안 접해왔던 수많은 사람을 겪으면서 이제는 사람에 대해 그다지 기대를 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슬픈 것일지는 모르나,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이며,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으니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때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 누구도 미워하거나 싫어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 동안이나마 더 많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하려 합니다. 예전에 그러지 못했던 제가 다만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것 중의 하나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나에게 다가와도 언젠가는 다 지나간다는 것을 알기에 커다란 고통이라고 할지라도 버티고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나에게 벅찬 일이 일어나면 그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조급하고 초조해서 먹을 것도 먹지 못하고 밤에 잠도 이루지 못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생각하고 목표로 했던 것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그 소중했던 시간을 걱정하느라 그냥 흘려보냈던 적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그런 걱정이나 염려를 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압니다. 기다리다 보면 최선의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더라도 그 고비가 어떻게든 지나가게 되기에 걱정도 염려도 예전처럼 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아픈 시간이라 할지라도 그 시간조차 잃어버리지 않으려 노력할 뿐입니다.


  나이가 들어 좋은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압니다. 사랑도 변하고, 인간관계도 변하며, 내 주위에 있는 사람도 변하고, 옳다고 믿었던 것도 변하며, 나 자신도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으나 이제는 그러한 모든 변화를 순수히 그리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자연의 순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변하는 것에 저항하지도 않고 몸부림치지도 않습니다. 물이 흘러가다 보면 물의 모습도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듯, 내 주위의 모든 것은 그렇게 변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것 중의 하나는 저 자신이 점점 더 무디어지는 것입니다. 예전엔 참으로 예민해서 아주 작은 것에도 반응을 하고, 사소한 것이 나의 삶을 어떻게 하지나 않을지 염려하고 불안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조그만 것으로 인해 따지고 신경 쓰며 살았던 것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조그마한 것들이 나의 삶을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사소한 것에 예민해하며 살아왔는지 지금 돌아보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제는 제가 그런 모든 일상에 대해 너무 무디어진 것이 아닌지,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 것인지 스스로 놀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무딘 저로 인해 제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웬만한 일이 일어나도 그리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며,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로 별로 신경을 쓰며 살아가지 않으니, 보다 자유로운 일상으로 지낼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것 중의 또 하나는 나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진정으로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오로지 이성적 생각일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마음으로 오늘 지금 이 시간의 소중함을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살아온 시간보다는 살아갈 시간이 훨씬 적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어떤 일들을 더 할 수 있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들과 정말 좀 더 의미 있는 일들로 오늘을 채워가기를 원할 뿐입니다. 누구를 미워할 시간도, 헛된 것에 낭비할 시간도 저에게는 없다는 것을 압니다. 우선 제 자신을 위해 현재라는 소중한 시간을 아껴서 사용하고, 저를 아껴주고 믿어주었던 사람들에게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나누려고 합니다. 아무런 의미 없는 시간으로 현재를 채우고 싶지 않기에 항상 깨어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할지 생각하곤 합니다.


  나이가 들어 좋은 것 중의 하나는 제 자신을 조금씩 알게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정신없이 사느라 저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젊어서 꿈꾸었던 일들, 목표로 했던 것들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살다 보니 나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며 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잘못된 길을 가기도 하고, 실수도 하며, 소중한 것들도 잃어버렸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가다 보니 나의 잘못들이 생각나고 눈에 보이며, 나의 생각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예전에 보지 못했던 세상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지금의 내가 아닌 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이제는 저 자신을 정말 사랑하려고 합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더 후회하기 전에, 나를 아껴주고 마음 써주려 합니다. 아마 나이가 들어서 가장 좋은 것은 나에 대해 알고 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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