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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25. 2022

나는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 누구의 도움도 구할 수 없는 곳에서 모든 것을 홀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습니다. 혼자서 해결해 나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나, 곁에 아무도 없을지라도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누구를 의지하고픈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 누군가가 나를 도와준다면 많은 힘이 될 거라는 생각은 했으나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의 한계에 이르렀을 때는 나도 모르게 그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곤 했습니다. 무의식에서라도 나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내 목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그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이겠지요. 또한 그 사람이 나에게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래전부터 혼자 지내던 습관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 줄 그때야 알았습니다. 겉으로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찾을지언정 나의 내면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에게 기대를 하는 것과 다름 아니었습니다. 물론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도 하고, 커다란 응원이 되어 주기도 했지만, 그것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은 나도 누군가의 이름을 마음 편히 부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삶에 대해 투정도 하고 싶었고, 나의 어깨에 있는 짐도 내려놓고 싶다는 말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짐을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인연이라는 것이 무거우면서도 가볍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 인연의 무게만큼이나 그 사람에 대한 이름의 무게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무거운 이름일수록 나의 입술에서 그 이름을 부르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광야에 나 혼자 서 있을 때 나는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을까요? 추운 한 겨울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하얀 들판에서 나는 그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을까요? 커다란 슬픔으로 나의 눈에서 나도 모르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을 때 나는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을까요? 너무나 기쁜 나머지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일 때 나는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을까요? 


  코흘리개 시절 내가 불렀던 이름들, 중고등학교 시절 집과 학교만 오고 가며 불렀던 이름들, 대학에 들어가 무엇이든지 해보려고 돌아다니며 불렀던 이름들, 대학을 졸업하고 낯선 이국땅에서 내가 불렀던 이름들, 다시 한국에 돌아와 이제까지 내가 불렀던 이름들, 그동안 돌이켜 보니 참으로 많은 이름을 불렀던 것 같습니다. 


  그 모든 사람이 이제는 어디에 가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아 있는지, 다시 만날 수는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동안 불렀던 그 많은 이름 중에서 앞으로 또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얼마나 될까요? 인연이 질긴 것이었다면 아직도 그 많은 이름 중에서 지금도 부르고 있을 터인데, 요즘 내가 부르는 이름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듯, 내가 알고 있었던 그 이름들도 세월의 강에 묻혀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다시 부르고 싶은 이름도 있는데, 다시 만나고 싶은 이름도 있는데, 나의 잘못을 이야기하고 싶은 이름도 있고,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은 이름도 있고, 너무나 보고 싶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은 이름도 있지만, 아마 나의 이러한 소원은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나의 마음속으로 나를 스쳐 지나갔지만,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이름을 부르고 싶습니다.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그 이름들을 부르고 싶습니다. 다시 만나지는 못할지라도 그 이름이라도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손을 붙잡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이름을 부르고 싶습니다. 


  나는 오늘 나의 내면에서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걸까요? 아마 그 사람이 나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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