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편제는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그 영화의 OST를 가끔 듣는다. 군대를 갔다 와서 대학 다닐 때 당시 과외하던 고등학교 남자애들 2명을 데리고 주말에 단성사에 가서 같이 보았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영화가 마음에 와닿아 아직도 그날이 잊히지 않는가 보다.
서편제 영화는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그 뮤지컬에 <살다 보면 살아진다>라는 곡이 있다. 왠지 그 곡은 예전에 서편제를 보았던 아련한 추억과 함께 내 맘에 들어와 버렸다.
< 살다 보면 살아진다>
혼자라 슬퍼하진 않아
돌아가신 엄마 말하길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 말 무슨 뜻인진 몰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주문 같아
너도 해봐 눈을 감고 중얼거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봐
엄마가 쓰다듬던 손길이야
멀리 보고 소리를 질러봐
아픈 내 마음 멀리 날아가네
소리는 함께 놀던 놀이
돌아가신 엄마 소리는
너도 해봐
눈을 감고 소릴 질러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봐
엄마가 쓰다듬던 손길이야
멀리 보고 소리를 질러봐
아픈 내 마음 멀리 날아가네
운명에 인생을 맡기는 것은 어쩌면 슬픈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을 만큼 아팠던 사람은 그것이 최선이 아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도 남는다. 원했던 것을 얻지 못해도, 진심으로 피하고 싶었던 일이 다가오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살다 보면 다 지나가고 살려고 하지 않아도 살아지게 된다.
이 세상엔 완벽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인생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할 수 없는 것, 가질 수 없는 것을 아무리 원한다 해도 나에게 올리는 없다. 떠나보낼 건 떠나보내고, 정리할 건 정리하면 된다.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니면 더 나쁜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나간 것도, 다가올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그냥 내가 할 일을 하며 지금 내 주위의 있는 사람과 따뜻하게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는 나도 살아가기보다는 살아져 가는 것을 선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삶의 평화로움을 느끼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내가 약자여서 그런 것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서일까?
적극적인 삶을 사는 분은 이러한 삶을 비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적극적인 삶을 살만한 여유가 없다.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 수밖에 없는 그런 나의 모습에 오히려 만족한다. 나에게는 이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살아있음만으로도 감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