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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n 05. 2022

그 시간과 공간에서

같은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다른 인식을 한다면 그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까?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바람 불듯 스쳐 지나가는 것이 인연일지도 모른다. 


  영화 <호우 시절>에서 동하(정우성)와 메이(고원원)는 함께 미국에서 유학을 했다. 하지만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유학 시절은 너무나 달랐다. 유학이 끝나고 오랜 시간이 흘러 우연히 만난 동하와 메이, 동하는 메이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메이는 동하가 일본에서 온 사토코와 사귀었다고 기억할 뿐이다. 동하 또한 메이는 벤과 사귄 것으로 알고 있었다. 사실은 메이가 동하를 좋아했었고, 동하 역시 메이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동하와 메이는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있었음에도 서로의 감정을 알지 못한 채 각자의 인식에 따라 다르게 기억하고 이해하고 있었다.       

              

<春夜喜雨(춘야희우)>     


            杜甫(두보)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 

江船火燭明(강선화촉명)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봄이 되어 내리네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시네 

들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강 위에 뜬 배는 불빛만 비치네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 

금관성에 꽃들이 활짝 피었네      

    

  영화에서 동하와 메이는 이 시를 좋아했다. 우리의 현실 또한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한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다른 인식으로 가까운 사람에 대해 잘못 파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가 내려야 할 때 오지 않으니 가물고, 비가 그쳐야 할 때 비가 오니 도움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우리는 왜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있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힘든 것인지, 아니 지금 얼마나 힘든 상태인지도 모른 채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가 진정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나와 함께 아름다운 봄날을 생각하고 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른 채 그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에서 메이는 지치고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그 어려운 시간을 함께 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바로 동하가 아니었을까? 뒤늦게 그것을 알고 메이에게 간 동하, 그리고 그를 받아들이는 메이, 그나마 스쳐 지나가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그들만의 호우시절이었다. 메이는 아마 동하가 함께 해주었기에 그 어려운 시기를 잘 버티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오래된 가뭄 속에 촉촉이 내리는 비가 땅을 적시듯, 메이에게 동하는, 동하에게는 메이가 서로에게 촉촉한 단비가 될 수 있었기에 그들은 아름다운 시공간을 공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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