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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n 03. 2022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


  사랑하고 소중했던 사람이 나의 곁을 떠난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허전할까? 주위가 온통 비어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러한 일상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신경숙의 소설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은 어린 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난 어떤 부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해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딸아이를 잃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회사에 충실하고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고 가족 모임에도 변함없이 얼굴을 내미는 남편이 견딜 수 없어졌어요. 일요일에 적막한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남편의 옆모습을 부엌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속에서 뭔지 모를 분노 같은 게 솟아올랐어요. 아침마다 어김없이 거울 앞에서 전기면도기 소리를 내며 면도를 하고 있는 남편이 한없이 멀리 느껴졌지요. 그런 마음이 쌓이다 보니 자연 잠자리를 함께하는 일도 싫어졌고, 몇 번 실랑이를 벌인 후론 남편 또한 제 몸에 손을 대는 일이 없어졌으며, 어느 날부턴가 서로 각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점점 그와 나 사이에 대화는 사라졌어요. 거의 말없이 지냈지요. 모든 일을 변함없이 덤덤히 이어나가고 있는 남편에게 제 마음의 공황 상태를 드러내지 않으려다 보니 점점 더 그렇게 되었지요. 처음부터 차라리 네 탓이거나 내 탓이라고 하면서 할말 못할말 다 내뱉고 한바탕 울기라도 했더라면 그토록 냉랭한 사이로 변하진 않았을 거예요.”


  아내는 남편이 너무 무정하게 느껴졌다. 하나밖에 없는 어린 딸아이가 저세상으로 가버리고 말았는데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남편에게 정을 느끼지 못했다. 가장 소중했던 존재가 사라진 시공간에서 예전처럼 지내는 남편의 모습에 엄청난 거리감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부엌 창으로 들어온 눈빛에 비친 남편의 얼굴을 바로 보았습니다. 연신 산에... 라고 대답하던 남편은 울고 있었어요. 딸아이를 잃고도 어디 하나 흐트러지지 않던 남편, 오히려 모든 일상을 더 단정히 잘 꾸려나가던 남편이 단추가 두 개나 풀린 구겨진 잠옷을 입고 입을 비틀며 울고 있었어요. 혼자서 죽은 딸아이를 산에 묻은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승진 시험을 보고 헤드헌터를 통해 연봉이 더 많은 곳으로 회사를 옮기던 남자가 종내엔 제 품에 와락 얼굴을 묻고 소리내어 울었어요. 제 잠옷 앞자락이 흠씬 젖도록요. 눈보라는 그쳐 있었고 마당에 수북이 쌓인 눈에서 태어난 흰빛은 거실을 지나 부엌까지 들어와 남편을 하얗게 비추었습니다. 이 눈물을 다 감추느라고 제가 산에 다니는 동안 이 남자는 그리 반듯하게 살았던 게지요. 제사를 지내고 다름없는 표정으로 친구들을 만나고. 그칠 줄 모르는 남편의 눈물을 바라보며 그 모든 일을 자연스럽게 수행하기가 저처럼 아예 안 하기보다 훨씬 힘들었겠구나 깨달았습니다.”


  남편은 어린 딸아이를 혼자 가서 묻었다. 어디에 묻었는지, 어떻게 장례를 치루었는지 아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딸아이는 자신이 혼자 가서 묻을 테니 따라오라고 하지도 않았다. 왜 그랬던 것일까? 

  남편은 아내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자신이 모든 아픔을 짊어지려고 했던 것이다. 슬픈 마음을 보여주면 아내가 더 딸에 대한 생각을 할까 봐 일부러 자신의 마음조차 보여주지 않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생활을 해나간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제가 오늘 병원에 간 연유는 며칠 전부터 구토가 나고 속이 메스꺼워서였습니다. 눈보라를 뚫고 제게 왔던 방문객이 구월이면 태어난다고 합니다. 병원 담장을 에워싸고 있는 개나리에 움이 트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하늘은 눈을 뿌리고 있는데 아랑곳없이 나무는 움을 틔우고 있더군요. 한 개 한 개의 움은 곧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어요. 병원에 오기 전엔 세상의 나무들이 이렇게 서로 아귀다툼하듯 봄을 기다리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산 위의 눈도 녹았을까요. 간혹 덧붙이곤 했던 너를 잊지 않았다, 라는 문장도 물이 되었을까요. 병원을 나와서 삼월의 때늦은 눈이 흩뿌리는 도시의 가로수 밑을 이리저리 걸어 다녔습니다. 어쩌면 이번 겨울의 마지막 눈일지도 모르지요.”


  우리 곁에는 지금 누가 있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아무리 소중한 존재라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작별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아픔은 너무나 크지만,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한계일 수밖에는 없다. 


  우리의 삶은 아픔과 기쁨, 만남과 헤어짐, 행복과 불행이 그러한 모든 것이 모여 있는 집합일 수밖에 없으니 그저 받아들이고 내려놓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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