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을 그만큼 몰랐던 것이고, 사람이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내가 다른 이에게 잘해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나름대로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고,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다른 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보다 나은 삶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틀리지 않는 것이라 지금도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다른 이에게 헌신을 했으니 나의 무의식에는 그도 나에게 어느 정도 양보도 하고 좋은 일도 하고 내가 한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나에게 무언가를 해줄 것이라 기대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기대를 왜 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어리석었던 저의 미련함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자, 그것이 그대로 나의 상처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다른 이에게 좋은 일을 했다고 해서 그가 나에게도 좋은 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그에게 커다란 헌신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나에게 보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가 나를 사랑할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러한 것들을 나도 모르게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가 한 것만큼 그 정도로 많이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고는 당황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 왜 돌아오는 것이 없지? 나는 너에게 이만큼이나 했는데 너는 그 정도는 아니어도 요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내면의 상처가 되었고, 가끔은 화가 났고, 어떤 때는 약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그와 더 이상 인연이 계속되기를 거부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고 나서야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나서는 그 모든 일을 바로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을. 내가 다른 이를 위해 하는 조그마한 도움을 주었더라도 그 순간 전부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을.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고, 그가 나에게 어떠한 도움을 받았는지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나에게서 무언가가 나갔다면 그 순간 바로 그것으로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익숙하지도 않아 조금씩 미련과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기대심리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구요.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듯한 생각입니다. 내가 한 일을 기억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나 편안하게 해 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바람이 불어 내 얼굴을 지나가면 그 시원함을 느끼지만,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그 바람이 언제 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제 다른 이에게 기대를 하거나 바라지 않습니다. 내가 그에게 어떠한 일을 한 것은 그저 내가 좋아서 한 것 그 자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 그것으로 끝이 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내가 그에게 헌신을 한 것도 아니고, 희생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에 불과하니 그 이상을 바란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하나 남아 있는 것은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헌신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나는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면 나도 그를 좋아해야 할 것 같고, 누군가가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면 나도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에서 나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니 이로부터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는 보다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