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기다리지 않습니다

by 지나온 시간들

예전엔 참으로 많이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약속을 하고 나면 그 시간이 되기 전에, 혹시 약속 장소에 가다가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리 30분 전까지 가서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약속 시간에 늦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약속 시간이 지나도 늦는 사람은 매일 늦었습니다. 30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고 1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아도 조만간 오겠지 하면 계속 기다렸습니다. 어떤 때는 2시간이나 기다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다리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왜 그렇게 오래도록 기다렸는지 나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전화를 많이 기다린 적도 있었습니다. 전화 올 때가 됐는데, 왜 오지 않는 거지, 하면서 전화기를 수시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물론 내가 먼저 해도 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었기에 전화 오는 것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기에, 그렇게 전화기만 바라보며 기다리곤 했습니다.


메일이나 문자가 오기를 정말 많이 기다린 적도 있었습니다. 소식이 궁금해, 잘 지내고 있는지, 무슨 일은 없는 것인지,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아, 일하다가 계속 그렇게 소식만 기다렸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 기다리기만 했던 것일까요? 오지도 않는 연락을 무엇 때문에 그렇게 기다렸던 것일까요? 언제 올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왜 그리 기다렸던 것일까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기다리던 버릇이 사라져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제는 기다리는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하지 않습니다. 약속 시간에 만나기로 했던 사람이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으면 이제는 10분 정도만 기다리다 서슴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나옵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더 이상 약속을 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의 전화나 문자나 요즘 많이 쓰는 카톡도 이제는 기다리지 않습니다. 오면 오고, 안 오면 안 오나보다 하고 아예 마음 쓰지 않습니다.


나에겐 이제 기다림이라는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어떤 기대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러한 기대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기다려도 별것 없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사람에 대해 엄청나게 기대하지 않는 이유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기다리지 않는 나 자신에게 가끔은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나의 마음이 차가워져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나 기다리다 지쳐 더 이상 기다린다는 것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오면 오는가보다 생각하고, 오지 않으면 오지 않나 보다 생각합니다. 전화가 오면 받고, 오지 않으면 전화기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문자나 카톡이 오면 답을 하고 오지 않으면 그냥 오지 않나 보다 하고 제 할 일을 합니다.


기다리지 않게 되는 것은 아마도 어디에 연연하거나 집착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물이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마음을 비우게 되니 기다리는 마음도 그렇게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좋은 것인지, 좋지 않은 것인지 저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제 솔직한 마음일 뿐이지만, 기다리지 않음으로 인해 마음 한편이 편한 것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또다시 기다리는 시간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애타는 마음이 이제는 나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다렸던 예전의 그 순간들이 그립기는 합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임을 알기에 그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놓아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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