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필연으로

by 지나온 시간들

우리 주위에는 우연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나하고 가장 친한 친구를 어떻게 만났는지 생각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 친구를 미리 알고 그와 친해지기 위해 계획하고 만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요즘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예전에 우연히 만났던 것입니다. 그 우연한 만남이 수십 년째 계속되곤 합니다. 그 친구들을 만나기 전 그들을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어떤 의도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우연이 아름다운 필연이 된 것입니다.


우연은 아픈 필연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우연히 만난 사람과 어느 정도 친해지다가 그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고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나한테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나를 배신하기도 하고 사기를 치기도 하며 나를 헌신짝처럼 버리기도 합니다. 우연이 어떤 필연으로 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돌연변이가 처음 나타날 때 이 합목적적인 장치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느냐가, 우연으로부터 태어난 이 새로운 시도를 잠정적으로 받아들일지 혹은 영속적으로 받아들일지, 그것도 아니면 거부할지를 결정하는 최초의 본질적인 조건이 된다. 자연선택에 의해 심판받는 것은 합목적적인 기능 상태, 즉 건설적이고 제어적인 상호작용들의 네트워크가 갖는 속성들의 전체적인 표현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렇기 때문에 진화 자체가 어떤 ‘의도’를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다시 말해 조상 대대로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꿈’을 계속 이어가고 확장해가려는 의도를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인간은 마침내 그가 우주의 광대한 무관심 속에 홀로 내버려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우주의 그 어디에도 그의 운명이나 의무는 쓰여 있지 않다. 왕국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 (우연과 필연, 자크 모노)”


자크 모노는 세균의 유전 현상을 연구하여 효소의 합성을 제어하는 유전자의 존재를 확인한 업적으로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유전자라 할지라도 항상 100% 정확하게 그 일을 감당하지는 않습니다. 가끔씩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실수가 바로 돌연변이를 만들어 냅니다. 일종의 우연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균의 돌연변이는 새로운 종을 만들어 냅니다. 그 돌연변이의 생존은 어떤 계획된 것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오직 완전한 우연의 결과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우연이 더 나은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아예 생존하지 못하고 멸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생존이냐 멸종이라는 필연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자연의 가장 중요한 원리인 진화가 가능해집니다. 자연이 선택한, 자연에 더 잘 적응하는 적자생존의 원리가 여기에 적용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도 모두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나의 부모, 나의 자식, 나의 친구나 연인 모두 우연의 결과입니다.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 앞으로 내가 만날 사람들 또한 우연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우연을 아름다운 필연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요? 그것은 아마 어느 정도는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이 우주공간에서, 그리고 이 시간의 연속적인 흐름에서, 우연히 만난 그 사람과 아름다운 추억들을 쌓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엄청난 확률 속에서 만난 내 주위의 사람에게 내가 악한 마음을 품는다면, 그 엄청난 확률의 우연이 아름답지 못한 필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나뿐만 아닌 그 사람까지도 돌이킬 수 없는 아픔으로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연은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필연은 나의 힘으로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운명은 우연이면서도 필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간 필연이야 어찌할 수 없지만, 앞으로 남은 필연이나마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 스스로 나 자신의 악한 모습을 볼 수 있어야만, 나의 선한 모습이 점점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수록 더 아름다운 필연의 결실이 맺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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