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자신의 입장이 있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 자기가 계획했던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생각했던 대로, 계획했던 대로,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각자의 입장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기에 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견해를 고수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자신의 태도를 고집하지 않을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건 자기가 하고자 하는 대로만 하게 됩니다. 결국, 상대와의 좋은 관계는 그렇게 조금씩 허물어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서로의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상대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 사람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입장만을 고수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 그에게 일어났는지, 말하지 못할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닌지 알아보려고 노력하였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이는 그를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내가 그를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나를 많이 생각하지 않을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조금 양보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던가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자신의 처지만을 고집한 채 상대에게 하나도 양보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인가요? 상대가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 이상, 상대는 어떤 사정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왜 조금도 양보할 마음을 가지지 않았는지요?
그 조그마한 것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상대도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 또한 나에 대한 마음을 서서히 접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어긋나게 되고, 그러다 결국 영원히 그 사람의 얼굴을 볼 기회가 사라져 버리겠지요.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면 별것도 아닌 것을 양보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후회라는 단어는 우리의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엔 양보도 훈련을 할 수 있고, 습관처럼 되어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처지를 고집하다 보면 그러한 것들이 몸에 배듯, 조금씩 양보하는 것도 점점 몸에 배어 가는 것 같습니다. 자아가 강하다고 해서, 자존심이 강하다고 해서 양보를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이 문제일 뿐입니다. 조그마한 양보도 없다면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가 오래간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누구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그 사람과는 인연이 끝나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조그만 양보 하나가 인연의 마침표를 찍게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