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유럽에 갈 때 탔던 비행기는 제주도 가는 비행기보다 훨씬 컸습니다. 그 커다란 비행기가 하늘 높이 올라갑니다. 지상에서 수천 미터 높이에서 거의 시속 1,000km/h 정도로 날아갔습니다. 옆에 있는 창밖으로 구름을 바라보고 고개를 조금 들어 밑을 보기도 합니다. 지상에 있는 건물, 산이나 들이 장난감처럼 보였습니다. 그 비행기 안에서 식사도 하고 책도 보고 영화도 보다가 잠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 높은 상공에서 자동차보다 10배가 빨리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무엇을 믿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런 것들을 했던 것일까요? 비행기가 날아가다가 갑자기 추락할 것이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믿는다면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오해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이 생각 저 생각이 나도 그 생각의 꼬리를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겨울 호수에 얼음이 얼었습니다.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얼음이지만, 금이 가기 시작하면 그 얼음이 깨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금이 간 얼음 위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단단했던 얼음이 깨져 호수에 빠질지 알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를 끝까지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쉽지 않기에 끝까지 믿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번 깨지기 시작한 신뢰는 어느 순간 모두 무너져 내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았던 관계도, 함께 했던 그 오랜 시간도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 것입니다. 잠시 불신했던 그 순간이 그 오래도록 믿어왔던 시간에 비하면 정말 찰나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가끔씩 그 찰나적 순간의 불신을 더 믿어 버리기도 합니다.
누구를 믿지 못한다는 것은 나의 문제일 뿐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 내가 모르는 다른 일들은 없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 찰나적 순간의 판단이 오판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믿으면서 왜 오래도록 가까이했던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사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 사람을 그냥 믿어주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일까요? 비행기는 그렇게 마음 놓고 타면서 왜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고 해도 믿어야 할 필요가 있고, 내가 바라는 것과 다르다고 해도 믿어야 하고, 내가 보이지 않은 것이 있기에 더욱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믿으려면 끝까지 그냥 믿어주기 바랍니다. 내 생각을 떠나서, 나의 지식을 떠나서 말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을 수 있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기에, 그것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내가 모르는 다른 것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냥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믿고 비행기를 타면 도착할 때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가 고장이 나지 않을까, 거센 제트기류를 만나서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비행기 엔진이 중간에 멈추는 것은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 비행기를 타고 나서 내릴 때까지 불안해서 결코 편한 마음으로 여행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결국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불안한 마음으로 편할 수 있는 그 시간을 전부 써버리고 만 것입니다.
물론 비행기도 사고가 날 확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이 탄 비행기를 그 정도도 믿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아예 그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편하게 집에서 하고 싶은 것이나 하면 되지, 굳이 힘들게 그런 비행기를 탈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믿었기에 그 사람도 나를 믿을 것입니다. 내가 믿지 않는데 그 사람이 나를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믿어준다면 그 사람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그 사람의 존재 가치를 알아준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