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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l 25. 2022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는다면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김훈의 <강산무진>은 퇴직을 몇 년 앞둔 어느 중년 남자가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것을 알고 서서히 삶을 정리하는 이야기이다.


  “담뱃갑 안에 일곱 개비가 남아 있었다. 일곱 개비를 다 피우고 나면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은 생애의 시간 속에서 피울 수 있는 담배 일곱 개비가 그다지 적지 않게 느껴졌다. 그것이 적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어쨌든 아직은 일곱 개비가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몸속에 깊이 스몄다가 토해지는 담배 연기는 호흡처럼 편안하고 친숙했다.”


  이 세상에서 좋아하던 것, 습관처럼 하던 것, 매일 하던 것들을 이제 더 이상 못하게 되는 날이 언젠가는 온다. 우리가 생각하는 당연한 것들의 끝은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그런 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가 없을 뿐이다.

 

  “점심 식후 삼십 분에 물약을 먹고 나서 은행에 가서 적금을 해약했다. 내년 3월이면 만기가 되어서 일억 원을 받게 되어 있는 적금이었다. 금년 겨울 전에 입원을 하게 되면 병실에서 적립금을 내기가 번거로울 것이었다. 12월 치까지 사 개월분 적립금 이백오십만 원을 일시불로 미리 지급하고 12월 31일 자로 해약했다.


  저녁때 주식을 처분했다. 전자주와 자동차주였는데, 성장 가능성이 있는 우량주들이었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시세 차트를 검색했다. 지난 두 달 동안 다소간의 등락이 있기는 했지만, 시세는 꾸준히 올랐고 거래물량도 늘고 있었다. 전망이 좋은 주식들이어서 당장 처분하기는 아까웠지만, 연말이 되면 어떨지 불안했다.”


  평생 땀 흘려 노력한 것의 결과는 무엇일까? 그 결과가 어떻든 우리는 그것을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모두 정리하고 내려놓고 남겨놓고 떠나야만 한다. 무엇을 위해 그동안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던 것일까? 내가 노력했던 것들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을까?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조선 후기 회화 특별전은 제1전시실에서 열리고 있었다. 거기에 강산무진도라는 산수화가 걸려 있었다. 가로길이가 팔 미터가 넘는, 긴 그림이었다. 특별전을 위해서 다른 미술관의 소장품을 빌려온 것인데, 그림이 길어서 전시실 칸막이를 걷어냈다고 설명문에 적혀 있었다. 화가 이인문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림의 제목처럼 팔 미터가 넘는 가로 화폭을 따라서 강산은 끝이 없이 펼쳐져 있었다. 눈으로 본 강산과 꿈에 본 강산, 꿈에도 보지 못한 강산들이 포개지고 잇닿으면서 출렁거렸다. 산들이 잦아지는 골짜기마다 마을이 들어섰고,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들이 펼쳐졌고, 들판 가장자리에서 다시 산맥이 일어섰다. 윤곽선을 풀어헤친 산맥은 연기처럼 엉키고 또 흩어지면서 허공 속을 흘러갔고, 기진해서 소멸해가는 산맥들이 하늘 속으로 빨려 드는 잔영 너머에서 바다는 시작되고 있었다.”


  삶은 잠시일 뿐이다. 영원할 것 같은 세월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거대한 자연에 비해 우리 삶은 덧없다. 끝없이 펼쳐진 강과 산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하루살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내는 며칠씩 집을 비우고 기도원에 들어갔다가 목이 쉬어서 돌아왔다. 아내가 기도원에 가는 횟수가 점점 잦아지자 딸이 교회 목사를 찾아가서 제 어머니의 행태를 설명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교회 목사는 ‘세상의 악과 폭력을 보고 슬퍼하는 것은 심성이 건전하다는 증거입니다. 그게 정상적 인간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혼 얘기를 먼저 꺼낸 쪽은 나였고 아내는 결혼이라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선선히 응했다. 이혼은 말다툼 한번 없이 합의되었다. 아내는 옷가지며 살림살이를 정리해서 기도원으로 들어갔다. 이혼한 지 삼 년 후에, 아내는 기도원 전도사와 재혼했다.”


  인위적이건 자연적이건 인연도 끝이 나기 마련이다. 인간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밖에는 없지만 아름다운 인연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람에 집착하고 연연할수록 그 인연의 아픔의 깊이가 클지도 모른다.


  “관리사무소에서 봉분 앞에 더운 쌀밥과 미역국, 주과포를 차려주었다. 나는 술잔을 올리고 두 번 절했다. 인부들이 가래질로 봉분을 밀어버리고 땅을 파 내려갔다. 땅속으로 뻗은 나무뿌리가 썩은 관을 친친 감고 있었다. 고무장갑을 낀 인부들이 삭은 염포를 걷어냈다. 땅속에 습기가 없어서 시신은 말끔히 육탈되어 있었다. 백골에도 감정 같은 것이 살아 있었다. 두개골은 노여움을 띤 듯한 표정으로 이가 숭숭 빠진 턱을 벌리고 있었고, 머리맡에 바스러진 머리카락이 먼지처럼 쌓여 있었다. 어머니는 생시에 어깨가 둥글었는데, 육탈된 어깨뼈는 완강한 직각이었다. 허벅지뼈는 골반뼈에서 분리된 채 앙상한 두 줄기로 가지런했고 손가락뼈와 발가락뼈는 마디가 분해되어 흩어져 있었다.”


  나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면 부모의 산소마저 돌봐줄 사람이 없기에 그것마저 정리해야만 한다. 이 땅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남겨놓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깨끗하게 모든 것을 정리하는 것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몫이다.


  “날이 저물어서 수련이 꽃잎을 오므려가고 있었다. 아직 덜 오므려진 틈새로 안쪽의 꽃술이 내비쳤고, 꽃잎의 안쪽에 흐린 어둠이 배어 있었다. 어둠은 밖에서 꽃봉오리 속으로 흘러 들어간 것 같기도 했고, 봉오리 안에서 생긴 어둠이 꽃잎 틈새로 흘러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작은 물고기들이 수면 위에서 퍼덕거릴 때마다 물 위의 저녁 빛들이 반짝였고 수련의 꽃봉오리들이 흔들렸다. 물 위에서 흔들리던 그림자들이 고요해지고, 물고기들이 그림자에서 그림자로 건너갔다. 건너가는 물고기 뒤로 실처럼 가는 물결이 잡혔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돌아가는 여고생들이 연못가에서 주전부리를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한 아이가 웃으면 다른 아이들이 따라서 웃었다. 웃음은 물결처럼 빠르게 퍼져나갔고 웃음이 한바탕 지나가면 또 다른 웃음이 일어섰다.”


  아름다운 생명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 생기 가득한 소녀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아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생명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그 자체가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다. 아득하고 가없는 산과 강들이 아래로 흘러갔다. 비행기가 동해에 가까워지자 산과 강이 끝나는 저쪽에서 안개처럼 뿌연 바다가 보였다. 날이 흐려서 바다는 잿빛이었고, 구름을 뚫고 쏟아지는 빛의 다발이 눈 덮인 먼 산들 위에 얼룩무늬를 드리우고 있었다. 강산무진도는 살아 있는 내 눈 아래 펼쳐져 있었고 그 화폭 위쪽, 산들이 잔영으로 스러지고 바다가 시작되는 언저리에서 새빨간 럭키스트라이크 담뱃갑이 바람에 날리는 환영이 보였다. 비행기가 동해 위로 나왔을 때 나는 유리창의 덧문을 내렸다.”


  죽음을 향한 마지막 여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어떠한 모습이건 그 길을 따라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작별을 해야 한다. 다시 볼 수 없는 그 존재들의 모습을 마음속에 새기며 우리는 언젠가 그렇게 떠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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