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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Sep 11. 2022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

그동안 살아오면서 제 자신을 힘들게 하는 감정 중의 하나는 분노였습니다. 가장 분노를 느꼈던 것은 20대 초반이었습니다.


부조리의 가장 대표적인 집단인 군대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어떤 잘못도 없이 맞고 짓밟혔습니다.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거린다는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가지려 해도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매일 당하는 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점차 분노라는 감정은 커져가기만 했습니다. 분노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며 진화해 갔습니다. 내면의 분노가 무의식에까지 스며든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러한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보면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가난한 이웃을 무시하고 그들에게 많은 이윤을 남기는 전당포 노파 아바노브나에 대해 깊은 분노를 느낍니다. 그의 분노는 성장하여 그 노파를 제거해야 할 악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노파를 죽이고 그 돈을 빼앗아라. 그리고 그 돈의 도움으로 나중에 전 인류와 공공의 사업을 위해 헌신하라. 네 생각은 어때, 하나의 하찮은 범죄가 수천 개의 선한 일로 무마될 수는 없을까? 하나의 생명을 희생시켜 수천 개의 생명을 부패와 해제에서 구하는 거지. 하나의 죽음과 백 개의 생명을 서로 맞바꾸는 건데, 사실 이거야말로 대수학이지 뭐야. 게다가 저울 전체를 놓고 보면 이런 폐병쟁이에 멍청하고 못된 노파의 목숨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노파는 해로운 존재니까. 남의 목숨을 좀먹고 있거든. 얼마 전에도 홧김에 리자베타의 손가락을 깨물었는데, 하마터면 손가락이 잘려 나갈 뻔 했지.”


  라스콜리니코프의 노파에 대한 분노는 결국 살인의 정당화로 진화하게 됩니다. 수전노 전당포 노인 한 명이 없어진다고 해서 사회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주인 아바노브나를 살해하게 됩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선택이 그리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분노는 이미 그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살인을 한 이후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라는 창녀를 만나게 됩니다. 소냐를 만나면서부터 그는 자신의 분노가 어떠한 일을 벌였는지 깨닫기 시작합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분노가 스스로를 눈멀게 하여 세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는 분노와는 차원이 다른 ‘죄’라는 것을 인식하고,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게 됩니다. 평범했던 한 인간이 분노로 인해 어떻게 파멸에 이르게 되는지를 이 소설에서 알 수 있습니다.  


  분노가 저를 힘들게 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 감정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분노라는 감정이 일어나더라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서서히 가라앉게 되고 나중에는 아예 사라지기에 만약 내면에서 일어나는 분노라는 감정을 스스로 잘 알아볼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커지거나 진화하기 전에 그것을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분노라는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나의 분노가 나를 힘들게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의 내면의 세계에서 어떠한 감정들이 오고 가는지를 볼 수 있게 된다면 그 감정이 더 커지기 전에 조절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잡한 사거리에서 자동차들이 아무리 많아도 교통 정리하는 경찰이 있다면 질서가 유지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분노에서 자유로울 때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분노는 아무런 이익이 없기에 그런 자유를 가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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