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
피로를 푸는데 목욕만 한 게 없다.
그래서 쌀쌀한 겨울 날씨에는 뜨끈한 대중탕 물속에서 느긋하게 몸을 담그는 것이 추운 계절을 기분 좋게 보내는 한 가지 방법이다.
나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많았는지 그 날 따라 아파트 단지 내 사우나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느긋한 휴식을 기대하고 간 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힐링 대신 빨리 샤워를 마치고 사우나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욕탕 안은 소음으로 시끄러웠다.
뿌연 김이 자욱하게 서린 탕 안은 들척지근한 열기로 추운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답답했다.
평소에도 사람 많은 장소를 병적으로 싫어하고 적정 데시벨이 넘어가는 소음을 견디는 인내심이 별로 없는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샤워부스의 자리가 비자 마자 잽싸게 비집고 들어갔다. 간신히 공간 확보에 성공하자 서둘러 샤워 비누로 몸을 씻은 뒤 사람 많은 탕 속 대신 뜨거운 사우나를 선택했다. 몸은 따뜻한 물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지만 사람 많은 탕 속에서 인상을 구기고 앉아 있느니 차라리 답답해도 조용한 사우나 부스 안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탕 속에 몸을 담그면 처음에는 다소 뜨겁다는 느낌이 들지만 온도에 적응한 개구리처럼 몸은 점점 깊숙이 물속으로 미끄러진다. 거의 턱 밑까지 몸이 잠기면 기분 좋은 나른함이 밀려오고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긴다. 하루를 돌이켜 보며 기분 좋았던 일, 아쉬웠던 일들을 상기하며 잠시 상념에 젖기도 한다. 가끔 아이들의 장난으로 물이 튈 때 외에는 이 작은 행복을 방해할 만한 요소는 별로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탕 속에 사람이 거의 없을 때를 가정한 일이다. 내가 사우나를 찾았던 그 날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혼자서 조용한 휴식을 기대하고 갔던 ‘사우나 힐링 프로젝트’는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사우나 부스 안에서 땀을 흘린 후 다시 샤워를 하기 위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아쉬운 마음에 탕 속을 힐끔 돌아보니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몇 분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창 손주 재롱에 빠져있을 법 한 나이의 할머니들로 보였는데 역시나 대화의 주제는 ‘손주’였다.
‘내 아이 키울 때는 몰랐는데 너무 이쁘고 사랑스럽다. 아들, 딸이 멀리 살아 손주를 자주 못 봐서 아쉽다.
명절이면 손주 볼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등등 손주사랑에 흠뻑 빠진 할머니들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귀 기울여 듣다 보니 우리 아이들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시던 친정 엄마, 시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런 마음이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른들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젊은 엄마였을 때의 내 모습이 떠올라 뒤늦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은 때로 참 미련하다. 겪어봐야 알고 당해봐야 깨우친다. 나이 들어봐야 노인들의 심정을 알고 애를 낳아봐야 비로소 부모 마음을 헤아리게 되니 말이다.
탕 속의 할머니 한 분이 말했다. “손주 보기가 너무 힘들지 않으세요?” 아마도 맞벌이하는 아들, 며느리를 대신해 손주를 맡아서 돌봐주고 있는 할머니를 향한 말인 듯했다.
“힘이야 들지요. 그런데 너무 행복해요.
평일에는 내가 봐주고 주말에는 아들 며느리가 와서 아이들을 데려가요.
주중에는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지내니 행복하고, 주말이면 잠시 쉬면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행복해요. 주말이 지나면 손주를 다시 볼 수 있으니 다가오는 월요일을 기다리는 마음이 또 행복하네요.
그러니까 결국 일주일 내내 행복한 셈이네요. 하하”
길지 않은 말씀이었지만 할머니의 말속에는 행복이란 단어가 여러 번 등장했다.
할머니의 말이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가슴속으로 잔잔하게 배어들었다.
할머니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손주를 봐주느니 차라리 밭일을 하겠다”
예로부터 농사만큼 힘든 일이 없다 했다. 그만큼 아이 보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말하는 것이리라.
일견 매정해 보이는 듯한 말이지만 자식을 키워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말에 서운함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몸과 마음이 고달픈 일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손주가 오면 너무 반갑지만 가면 더 반갑다” 아이들이 예뻐서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하지만 그만큼 힘에 부치고 고되다 보니 어서 갔으면 하면 이중적인 마음이 생긴다는 재미있는 유머이다.
이런저런 말속에 담긴 뜻은 결국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가 한없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돌보는 일은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핏줄이라도 선뜻 용기를 내기가 어려울 만큼...
그런데 목욕탕에서 만난 할머니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손주 키우는 힘든 일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행복하고, 또 저런 이유로 행복하다면서 얼굴 가득 미소를 담은 채 자신의 삶을 무한 긍정했다.
살다 보면 힘든 일 투성이다.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고 행운은 교묘하게 나만 피해 가는 듯하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경우는 나를 두고 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사는 게 힘들다고, 삶이 불공평하다고 갖가지 변명과 합리화로 불행을 극대화시킨다.
그러는 사이 마음의 문은 점점 좁아져서 어느 순간 아주 작은 행복 조차 들어올 틈이 없어지고 말았다.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했던 나는 어느새 할머니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할머니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아 오래오래 비누칠을 하고 천천히 머리를 감았다.
평소 한 번 밖에 들어가지 않는 사우나 부스에도 두 번이나 들어갔고 목도 마르지 않은데 물을 마시려고 욕탕 밖을 들락 거리며 늑장을 부렸다. 할머니의 행복론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져서였을까?
따뜻한 대화가 오가는 그곳에서 조금 더 머무르고 싶었다.
삶의 궁극적은 목적은 누가 뭐래도 행복이라 믿었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 하루를 기꺼이 저당 잡히는 삶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았다.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은 뒤로 미룬 채 오지 않을 미래를 걱정하며 살았다.
‘파랑새 증후군’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이상만 추구하는 병적인 증세를 일컫는 말로 벨기에의 극작가이자 시인, 수필가인 마테를링크의 동화극 <파랑새>에서 유래한 말이다.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났지만 결국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내 집 안에 있었다는 얘기다.
할머니의 파랑새는 손주였다. 닷새는 손주와 함께 하는 시간으로 행복했고 손주가 없는 이틀 동안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손주를 다시 볼 한 주를 준비하는 일로 분주하고 즐거웠다.
할머니는 파랑새가 자기 집 새장 속에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었고 품 안의 파랑새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지혜로운 분이었다.
소확행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거창한 행복이나 미래를 위해 현재의 소소한 행복을 포기하는 삶 대신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일컫는 말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핸드밀로 커피를 갈고 곱게 갈린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어 드립퍼로 내린다.
거실 안은 곧 향기로운 커피 향으로 가득 찬다.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입안 가득 진한 커피 향이 밴다.
나의 소확행이다.
나만의 작은 책상에서 새벽의 어슴푸레한 박명을 바라보며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책을 읽는다거나 글을 쓸 때, 이 또한 소확행이다.
남편과 맥주 한 캔을 옆에 두고 스크린을 내린 후 좋아하는 영화를 본다.
세 번째 소확행이다.
나에게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뜨거운 김이 자욱한 대중목욕탕의 물속에서 우연히 건져 올린
삶에 대한 한 조각 통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