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청년들의 이유있는 퇴사

-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면 환자다 -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겨울은 살과의 전쟁이다.

방학이 되면 학기 중 지쳤던 몸과 마음을 쉬느라 나도 모르게 게을러지고 운동은 어느새 저만치 멀어진다.

추운 날씨 때문에 움직임의 반경이 좁아지고 실내 활동이 주가 되다 보니 몸에는 조금씩 살이 붙기 시작한다.

이대로 뒀다간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이 고조에 달하면 신발장 한 구석에 얌전히 놓여있던 운동화를 다시 챙겨서 피트니스 센터로 향한다. 안 그래도 무거워진 몸에 싫어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무거워진 마음까지 안고 묵묵히 헬스장을 향한다.


오랜만에 하는 운동이다 보니 온 몸이 뻣뻣해질 대로 뻣뻣해져 조금만 무리를 하면 사달이 날 것 같은 불안감마저 든다. 우선 가볍게 유산소 운동부터 시작할 요량으로 바이크를 탔다. 걷는 것에 비해 시간당 운동 효율이 높다기에 시작한 바이크다. 확실히 걷는 것보다는 땀이 빨리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즐기기보다는 의무감에 하는 운동은 집중이 힘들다. 궁여지책으로 바이크에 앉은 채로 음악을 듣거나 가벼운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가끔은 이마저도 지겨워져서 영상을 보기로 하고 유튜브 검색을 했다.


청년 취업문제가 심각한 세태를 반영이라도 하듯 젊은 청춘들의 얘기, 취준생, 퇴사생 등에 관한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취업을 해야 비로소 인류로 진화한다는 ‘취업 인류’ '흙수저'와 '인턴'이 합쳐진 ‘흙턴’ 끊임없이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는 '호모스펙파쿠스'등 취업이 힘든 현실을 반영하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어렵게 취업을 해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컨디션에 따라 지시사항이 바뀌는 직장상사로 인해 얻는 화병을 뜻하는 ‘상사병’과 ‘직장살이’ 등 수많은 유행어 속에는 청년실업과 조기퇴직이 동시에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진 청춘들의 슬픈 자화상이 담겨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여기저기서 ‘퇴사하고 싶다. 퇴사를 준비 중이다’라는 아우성이 들려온다.

말 그대로 엄청난 경쟁을 뚫고 들어가자마자 퇴사를 준비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봉착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곱게 자란 젊은 세대들의 호강에 겨운 소리라고 치부하고 말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호기심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청년 퇴사를 다룬 다큐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프로그램은 세 명의 퇴사생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좋은 스펙으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입사해서 회사 생활을 했던 사람, 글 쓰는 게 좋아 IT잡지의 기자 생활을 한 사람.

이미 서너 곳의 직장을 거쳐 다시 퇴직자가 된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각각의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이 땅의 청춘들의 이야기였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입사하자마자 퇴사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이제야 살 것 같다. 지금이 회사에 있을 때 보다 훨씬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주변인들의 걱정과 부모님의 기대가 부담이 되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반면 기성세대인 부모들의 입장은 많이 달랐다.

그 어려운 취업 문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 무엇보다 기뻐하며 자식 자랑에 바빴던 부모들은 180도 달라진 상황에 당혹스러워했다.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아들이나 딸의 퇴사 소식을 알리지 않았고 명절 때 방안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자녀에 대한 불만을 대놓고 드러냈다.

그 좋은 직장을 왜 팽개치고 나왔는지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한 번 들어가면 직장에 뼈를 묻는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회사를 다녔던 부모세대와 요즘의 젊은 세대는 자라온 환경도, 삶의 패턴도, 가치관도 너무나 달랐다. 어른들의 눈에 비친 이들의 퇴사는 큰 어려움 없이 곱게 자란 아이들의 말도 안 되는 투정의 다름 아니었다.

물론 그 기본 바탕에는 자식에 대한 걱정과 앞날에 대한 불안이 깔려있음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다큐 속에 등장한 퇴사자 A 씨는 대기업 문화에 잘 적응했고 친화력이 뛰어난 유능한 일꾼이었다.

분위기 메이커로 회사 내에서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던 그는 누가 봐도 아무런 문제없는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퇴사는 다른 사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듯했다.

“퇴사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라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그가 답했다.



“저는 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별은 각 면마다 자기만의 확실한 색깔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회사는 그 각진 부분을 깎아서 둥글둥글하게 만들라고 강요해요.

그래서 어디에 들어가도 쉽게 박힐 수 있는 튀지 않는 동그라미가 되길 바랐어요.

제가 없어지는 거죠.

더 이상은 그렇게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퇴사를 결심하게 됐어요”



“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라는 그의 말에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개성이 있고 그 자체로 특별한 별 같은 존재다.

그런데 직장인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영롱하게 빛나던 그 빛은 조직 속에 매몰되어 어느 순간 점점 빛을 잃어간다. 예리함과 날카로움으로 반짝이던 개성도 무디어져서 입고 있는 검은색 정장과 블루 넥타이처럼 누구나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닮아간다.

‘나’라는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직장인’이라는 집단 정체성이 들어서게 된다.

잘 나가던 대기업의 엘리트 사원이었던 그는 이 사실을 견딜 수 없었고

더 이상 회사 다니는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주변의 시선, 부모님의 기대, 타인의 편견, 미래에 대한 불안 등 첩첩산중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온전히 나로 살고자 하는 욕구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또 다른 퇴사자는 퇴사한 게 자기 잘못이 아닌데 사람들이 자꾸만 자신의 잘못으로 몰아가니까 자존감이 점점 떨어져서 힘들었다고 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본의 아니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휴직 후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이직을 문제 삼아 ‘직장 부적응자’ 란 낙인이 찍혔고 재취업은 점점 어려워졌다.

결국은 자신의 일을 하기로 결심한 후 조금씩 준비작업을 거쳐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녀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비록 안정적이지 않고 힘은 들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무언가를 이루어 간다고 생각하니

직장생활을 할 때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했다.



시대가 변했다. 예전에는 회사가 평생직장이었고 안전망이었다.

사원들은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회사가 유일한 세계였다.

가정은 회사를 위해 존재했고 회사에 충실하는 것이 곧 가정을 지키는 일이라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막을 내렸다.

저성장이 지속되는 사회에서는 평생직장도, 정년보장도 더 이상 의미를 갖기 힘들어졌다





'You only live once(한 번뿐인 인생)' YOLO(욜로)' 가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했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뼈 빠지게 일만 해 온 기성세대가 보기엔 배부른 소리로 들리겠지만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20~30대 젊은이들에는 욜로가 어느덧 삶의 모토가 돼가고 있다.

한 번뿐인 인생, 자유롭고 멋지게 살고 싶다. 그런데 밥벌이가 문제다.





직장인의 치열한 삶을 다룬 드라마 <미생>의 대사 중에 ‘회사 밖은 정글’이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직장인 앱에는 심심찮게 퇴사를 결심한 사람들의 글이 올라오고 이에 줄줄이 “부럽다”는 댓글도 함께 올라온다. “그만두고 뭐 할 거야?”라는 물음에 잠시 멈칫하지만 이내 “세계여행”이라는 답이 달린다.

뻔한 답이지만 누구나 한 번쯤 꿈꿨을 법한 얘기다. 나 역시도 만약 퇴사를 한다면 “세계여행”에 도전하고픈 마음이 언제나 있으니까..


그럼 여행이 끝난 후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여기서부터 막막해진다.

여행 후 반짝이는 영감을 받아 멋지게 창업을 하고 CEO로서 180도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글로벌한 인재로 급성장해서 말만 하면 누구나 아는 다국적 기업에서 창의적인 업무를 맡게 될까?


떠나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지고 삶의 지도를 새로 쓰게 되는 일은 영화나 신문 기사에나 나올 법한 얘기다.


대부분은 당장의 통장잔고를 걱정해야 하는 서글픈 신세가 되어 떠나온 회사를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고급 승용차나 아파트 평수가 더 이상 성공의 기준이 아닌 시대에서 퇴사에 대한 고민은 회사적 인간으로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일의 의미를 찾기 위한 시발점이다.

무엇보다 한 인간으로서,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존재가치를 되돌려 받기 위해서다.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삶을 재정비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거대 시스템 속에 매몰된 내 삶을 되돌아보기 위함이기도 하다.


물론 퇴사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안전하고 넓은 길, 누구나 가는 길이라는 이유만으로 위안을 삼으며 자신을 지키는 삶을 포기하고 사는 게 과연 정답일까라는 물음에서 퇴사에 대한 고민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고민의 중심에는 결국 ‘행복’ 이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단순히 힘드니까 때려치운다가 아니라 더 나은 직장생활, 더 나은 인생을 위한 고민이다.

많이 벌어서 많이 소비하는 삶을 돌아보고 회사에 빼앗겼던 내 삶의 주도권을 다시 찾아오기 위한 청춘들의 반란이다. 회사와 더불어 사는 삶이 힘들어지고 내 삶과 조직의 삶을 일체화할 수 없는 사회 속에서 남는 것은 결국 욜로, 즉 한 번뿐인 내 인생이다.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방황하는 개인을 되찾기 위해, 고도성장의 시기가 지나고 찾아온 저성장의 늪에 빠진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할 청춘들의 자구책이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면 환자’라고 일갈했던
개그맨 유병재의 뼈 있는 농담은
희망고문, 긍정의 바이러스를 강요하는
이 시대에 던지는 일침이다.

'이만하면 괜찮으니 그래도 버티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위로, '조금만 견디면 좋은 날이 온다'는 희망고문, '술이나 한 잔 하며 잊어버리자'는 자조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가 던지는 ‘화려한 성취와 소비’라는 미끼의 달콤한 유혹의 뒤편에는
‘자아상실과 불안’이라는 어두운 그늘이 자리하고 있다.


결국 삶의 방식의 문제다.


남느냐 떠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행복해지는 방식에 대한 모색이 그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너도 나도 그 자체로 빛나는 아름다운 별이다.

별이 되고픈 청춘의 희망을 잔인하게 짓밟는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