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사랑의 생애>
살기 위해 사랑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랑도 있는 것이다
에로틱한 것들은 실은 에로틱하지 않다. 안타깝고 안쓰럽다.
---------- 이승우 <사랑의 생애>
여기 사랑에 관한 네 가지 보고서가 있다. 한 때 자신을 짝사랑하던 후배 선희의 사랑을 물리친 후 2년이 훌쩍 지나 우연히 다시 만난 자리에서 갑자기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 형배의 사랑이 첫 번째다. 늦은 나이에 첫사랑이 찾아온 영석은 넝쿨식물처럼 선희에게 밀착해서 사랑을 구걸한다. ‘에로틱한 것들은 실은 에로틱하지 않다. 안타깝고 안쓰럽다’는 명제로 대변되는 영석의 사랑이 두 번째다. 끊임없이 사랑을 의심하며 불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남자 영석의 ‘약함과 보잘것없음’에 끌린 선희의 사랑도 있다. 평소 자유연애주의자였던 준호는 ‘결혼해야 키스할 수 있다’는 여자를 만나 ‘키스하기 위해’ 결혼을 결심한다. 네 번째 사랑의 모습이다.
네 남녀의 사랑에 관한 보고서라도 해도 무방할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다.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는 것, ‘사랑하기’라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랑이다. 이 기적의 주체는 사랑이다. 연인들은 사랑이 기적을 행하는 장소이다. 사랑이 사랑하게 한다.” 소설 속 문장처럼 네 사람의 ‘숙주’를 통해 사랑이 어떻게 탄생하고 소멸하는지 보여준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한국판쯤 되는 이 소설은 다양한 사랑의 형태와 색깔에 고배율의 현미경을 들이댄 채 논평하고 분석한다.
형배는 과거에 사랑할 자격 운운하며 선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어렸을 때 사랑을 좇아 가출한 아버지가 남긴 상처가 있었다. 사랑은 곧 위험한 일이었고 해서는 안 될 일이었기에 사랑이 다가오면 서둘러 도망치기만 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선희에게 갑작스럽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그런 자신을 멈출 수 없게 되자 형배는 당황한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작가는 '사랑이 저지른 짓'이라고 말한다.
"사랑할 만한 자격을 갖춰서가 아니라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올 때 당신은 불가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
하지만 선희에게는 이미 새로운 사랑이 자라고 있었다. 한 번도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는 남자 영석은 선희에게 무섭도록 집착하며 사랑을 갈구한다. 이제 사랑은 삼각관계에 접어들었다.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두 남자가 대립하는 삼각의 링이 마련된 순간 ‘질투’라는 또 다른 감정이 개입하게 된다.
“질투하는 사람이 질투하는 대상은 실체가 아니라 그 또는 그녀가 상상하고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그러나 허상이기 때문에 꿈쩍하지 않고 자기가 만들었기 때문에 외부 존재의 조종을 받지 않는다. 허상은 견고하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가 비극을 자초한 이유는 ‘질투’ 때문이었고 ‘질투’라는 감정의 이면에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 없음’ 이 자리하고 있었다. 영석도 다르지 않았다. 이성에게 어필한 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영석에게 질투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낸다는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아내를 의심한 오셀로처럼 이미 ‘의심할 준비’를 갖춘 영석을 이해시키기엔 어떤 말도 역부족이었다. ‘선희가 말하는 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영석이 듣고 싶은 대로’ 들었기 때문에 그녀의 말은 공허하게 흩어졌다. 사랑 밖에는 가진 게 없는 자의 사랑은 절박하다. 비루한 방법으로 선희를 괴롭히고 절망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는 사랑의 권력관계에서 그가 ‘을’이었기 때문이다. 주도권을 빼앗긴 사랑은 칼자루를 쥔 상대의 눈빛 하나, 표정 하나에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고 작은 사건도 확대해서 해석한다.
“대부분 자각하지 못하지만 어떤 이에게 약함은 치명적인 무기다”
‘약함’이라는 치명적인 무기를 장착한 영석을 선희는 거부하지 못했다. 넝쿨식물처럼 필사적으로 감겨드는 영석을 뿌리치지 못한 건 “에로틱한 것들이 실은 에로틱하지 않다. 안타깝고 안쓰럽다”는 작가의 말처럼 살고자 매달리는 사랑을 거부할 힘이 선희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5월의 신부가 되었다. 햇살은 따사로웠고 내 마음은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그렇게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한 집안의 며느리,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시간의 풍화작용을 온몸으로 겪는 동안 열정은 어느새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반복되는 일상, 지난한 육아, 부부싸움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단단하게 똬리를 틀었다.
사랑이 저무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사랑의 싹이 막 움튼 아름다운 봄날, 열정 가득한 찬란한 여름이 지나면 일상의 권태가 낙엽처럼 쌓이는 가을이 온다. 메마른 감정만 위태롭게 달린 앙상한 겨울을 향해 사랑의 사계절은 저물어 간다. 마치 인간의 생로병사처럼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예정된 수순이다.
사랑은 인내와 열정의 방정식 인지도 모른다. 젊었을 때의 사랑은 ‘열정’에 가깝다. 나이가 들면 ‘인내’가 절실해진다. ‘열정’으로 시작한 사랑이지만 ‘인내’라는 동반자가 함께하지 않으면 그 사랑은 쉽게 깨지고 만다. 결혼이라는 나이를 또 한 살 먹으며 생각이 많아진다.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리려 애써 보지만 가물가물하다. 사랑의 4계절 중 나는 어디쯤 지나고 있는 걸까?
“사랑은 옆에 있으면 너무 좋아 환장할 것 같은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 없을 때 죽을 것 같은 사람과 해야 한다." 는 책 속의 구절이 떠오른다. 좋아서 환장할 것 같은 시간은 오래전에 끝났다. 그런데 옆에 없으면 죽을 것 같긴 하다. 현재 내 사랑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