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항에서 억류당했다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가족과 여행 중 공항에서 억류당한 경험이 있다. 비행기 환승을 위해 중국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받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입국 심사대를 통과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나만 보내주지 않았다. 중국 공안은 자기들끼리 눈짓을 주고받더니 무조건 대기하라고만 했다. 아무리 개방과 개혁을 했다고 해도 중국은 엄연히 공산주의 국가이다. 삼엄하고 딱딱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든 상태에서 입국제지까지 당해 버렸으니 당황스러웠다. ‘이러다 공안에 넘겨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만 이곳에 남아서 조사를 받아야 하나?’ 상식이 통할 것 같지 않는 나라에서 당할 봉변을 생각하니 머릿속에서는 저절로 소설이 펼쳐졌고 공포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이들과 남편도 영문을 몰라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억류(?)는 금방 풀렸고 이유 따위는 묻지도 않은 채 재빨리 검색대를 통과했다. 아마도 여권 사진이 문제인 것 같았다. 정확한 이유는 여전히 알 길이 없지만 중국 공항에서 존재를 거부당한 경험은 꽤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나라와 나라에서도 존재 증명은 필수였다. 하지만 사진 한 장에 기대 나를 증명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여권사진 외에도 한 페이지의 글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일도 있다. 입시와 취업을 위한 자소서 얘기다. 대학입시를 위해, 취업을 위해, 학생들과 취준생들은 수십 장, 수백 장의 자소서를 쓰고 버리기를 반복한다. 고3인 조카도 대입 수시 여섯 번의 기회를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자소서와 씨름했다. 동아리, 진로, 봉사 활동 등 별 것도 아닌 것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지고 나 이외의 타인들은 모두 대단해 보인다. 포장을 잘해야 수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선택받을 수 있다는 압박감에 아이들은 상처 받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임을 알기에 ‘자소설’이라는 푸념을 하면서도 머리를 싸매고 책상 앞에 앉을 수밖에 없다.

밥을 벌기 위해 어른들이 써야 하는 이력서도 다르지 않다. 둥글고 모나지 않은 인성을 갖춘 예의 바른 사람이자 최고의 능력자임을 은근하게 어필해야 한다.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시장에서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포장은 필수다. 하지만 그 포장이 너무 화려하거나 번쩍 거리면 안 된다. 드러내기와 감추기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묘기를 부려야 한다. 그래서 이력서나 프로필을 쓸 때면 마음이 편치 않다.


삶이란 어쩌면 필사적으로 ‘쓸모 있음’을 입증해야 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우리 회사에 지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우리 학교가 당신을 뽑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보세요" '면접'이라는 합리적이고 공식적인 단어로 포장하고 있지만 이 질문 속에는 "너를 믿지 못하겠어" "어디 한 번 네 쓸모를 증명해 봐"라는 서슬 퍼런 언어 가 내장되어 있다. 만약 더듬거리거나 면접관의 눈 밖에 난 행동이라도 했을 경우 한 사람의 정제 성은 가차 없이 난도질당하고 존재는 폐기 처분된다.


학창 시절 불시에 당했던 소지품 검사 역시 '학생 다움'에 대한 증명을 요구하는 폭력이었다. 화장품이나 담배, 라이터 등 학생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물품이 하나라도 발견되면 즉각 학생부로 넘겨져서 위반의 이유, 즉 '학생 다움'을 포기한 이유를 설명해야만 했다. 이미 규정된 틀 속에 억지로 끼워 맞춰야 하는 모든 순간이 당혹스러웠다.


시인 정현종은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고,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일이라고 했다. 오로지 회사에 득이 될 사람인지 여부만을 판단하는 잣대만으로는 한 사람의 존재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결국 책상에 앉았지만 A4지 한 장에서 두 장 정도의 짧은 글이 쉽게 써지지 않는다. 생판 모르는 타인의 얘기를 쓰라는 것도 아니고 가장 잘 알고 있는 자기 얘기를 쓰라는 건데 우리는 왜 자소서의 한 줄도 쓰기 힘들어하는 걸까? 뜬금없는 ‘너는 누구냐?’에 대한 질문에 강제로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 영 마뜩잖아서이다. 몇 줄로 요약되는 삶이 너무 가볍고 초라하게 느껴져서이기도 하다. 과정은 생략된 채 몇 개의 글자로만 남은 이력(?)에 한없이 작아지고 주눅이 든다. 오기도 생긴다. 몇 줄의 문장으로 나라는 사람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는 생각,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한 색깔이 프로필 몇 줄 속에 요약될 수 없다는 억울함, 종이 한 장에 온전한 나를 모두 담을 수 없다는 외침이 이력서 쓰기를 주저하게 한다.


책을 낸 저자가 되고 난 뒤 여기저기에 프로필을 내밀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중고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그것도 모자라 온갖 학위와 자격증을 나열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요즘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덤덤하게 표현하는 프로필에 더 마음에 간다. 강박적으로 나를 증명하는 일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덕분이다. 어차피 나란 사람을 종이 한 장에 담을 수 없다는 배짱이 생겨서이기도 하다.


‘OO 대학에서 OO을 전공한 뒤 OO 학위를 받은 사람’에서 ‘책이 빼곡한 서재에서 읽고 쓸 때 가장 행복한 사람’ ‘주말에는 방구석 영화관에서 맥주 한 캔을 옆에 두고 영화 보는 사람’으로 내 프로필이 바뀌었다. 바뀐 프로필이 진짜 내 모습에 더 가깝다.


자소서로 고민하는 조카에게 “포장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너를 표현해 봐. 자소설 대신 진짜 네 얘기를 써”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다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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