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은 예쁜 사람도, 머리가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말 잘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많은 사람 앞에서도 떨지 않고 논리 정연하게 할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중세시대 신을 숭배하듯 경건한 마음이 절로 생겨났다.
나는 구제불능의 발표불안 환자(?)였다. 어렸을 때부터 낯을 심하게 가렸다. 사람 많은 곳에서 말을 해야 할 때면 거의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이 밀려왔다. 애써 그런 자리를 피했지만 어쩔 수 없이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전날부터 잠을 설쳤다. 사람들 앞에 서면 얼굴이 벌개 지고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첫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에 투고를 했을 때 실제로 책을 낸 출판사 외에도 몇 군데서 콜을 받았다. 그중에서 마음이 가는 출판사가 있었고 그쪽에서 책을 내고 싶었다. 미팅 자리는 화기애애했고 자연스럽게 계약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편집자가 “작가님, 책 나오면 강연도 하셔야 해요”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순간 혼비백산한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고민 끝에 출판 제의를 거절하고 말았다. 강연이 두려워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놓친 자신이 한심했고 비참하게 느껴졌다. ‘이번 생에서 발표는 글렀어’라고 쿨하게 마음을 정리한 후 포기하고 살았는데 이 말이 예언처럼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녔다. 결국 책은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다. 하지만 강연은 출판사가 바뀌었다고 피해 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사회불안의 일종인 ‘발표불안’의 기저에는 실수했을 경우 받게 될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나를 무시하지 않을까, 함부로 대하지 않을까’ 하는 타인의 시선에 과도하게 신경 쓴 탓이다.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은 가장 손쉬운 ‘회피’였다.
책이 나오기 몇 달 전부터 고민이 깊어졌다. 결국 거액을 들여 강사 교육과정에 등록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퇴근 후 먼 거리를 오가야 하는 고된 일정이었지만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강연 스킬, 좋은 PPT 만드는 방법, 발성과 제스처 등 강연자로서 갖춰야 할 기본기에 대한 수업이 이어졌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었지만 이것만으로는 두려움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비싼 돈을 내고 공부를 했는데도 별반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또다시 불안이 밀려왔다. 이론 수업이 끝나고 실연을 하는 일정만 남았다. 5분 스피치를 준비해서 직접 연단에 올라가서 강연을 하는 수업이었다. 아무리 연습이었지만 또다시 공포가 밀려왔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벽을 넘지 못할 것 같은 또 다른 공포도 밀려왔다.
단 5분을 위해 몇 날 며칠을 준비했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몸은 사시나무 떨 듯이 떨렸고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긴장 속에 강연을 마쳤다. 강사의 피드백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고 다른 사람의 강연도 눈에 들어왔다. 5분간의 실연이 그동안의 모든 과정보다 더 큰 도움이 되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비록 실수투성이의 미숙한 스피치였지만 많은 사람 앞에서 5분의 시간을 견뎠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대견스럽게 여겨졌다.
‘나는 할 수 있어’라고 수백 번 소리쳐도 실제 체험이 없으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두려워하는 것을 바라보고 그것과 함께 머무를 수 있을 때 불안이라 거대한 벽을 넘어설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지금까지와 조금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책이 나왔고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이 왔다. 첫 강연은 도서관이었다. 5분 스피치와는 비교도 안 되는, 꼬박 2시간을 혼자 떠들어야 하는 부담백배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료를 모으고 PPT를 만들었다. 이제부터는 치열한 연습만이 살 길이었다. 시간을 재고 핸드폰으로 동영상도 찍었다. 마음이 들지 않는 부분은 반복해서 연습했다. 나중에는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암기하게 되었다.
드디어 D-day가 되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강연장에 도착해서 자료 세팅을 마쳤다. 조금 있으니까 하나 둘 청중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완벽한 연습으로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듯했지만 그건 연습할 때만 통하는 얘기였다. 가슴이 다시 방망이질하며 뛰기 시작했다. 할 수만 있다면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의 시간은 잔인하게 당도했고 홀로 연단에 서야 할 시간도 다가왔다.
초롱 초롱한 청중의 눈을 애써 피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우려와 달리 실제로 강연을 시작하자 큰 실수 없이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청중들의 얼굴도 하나 둘 시야에 들어왔다. 마침내 두 시간이 흘렀고 강연도 끝났다. 마지막 멘트를 하고 인사를 하자 생각보다 큰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담당자한테도 좋은 피드백을 받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부심으로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내 인생에서 발표불안이 사라진 날이었다.
학창 시절 발표시간만 되면 긴장으로 머리가 하얘지고 횡설수설했던 일, 자기소개 시간도 부담스러워 슬며시 자리를 피했던 일 등이 하나 둘 떠올랐다. 할 말을 못 하는 자는 고통스럽다. 수치감, 모멸감, 바보가 된 느낌을 종합 선물세트로 받게 된다.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데 제 때 언어로 태어나지 못한 말은 어딘가에 지층처럼 쌓여 있다가 화석으로 굳어진다. 욕구가 좌절당한 인간은 그래서 가슴 한 구석이 딱딱하게 굳어있다.
막상 해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왜 수십 년을 말 못 하는 고통(?) 속에서 살았을까 생각하니 억울하기까지 했다. 이후 강연 요청이 오면 흔쾌히 받아들였고 수백 명이 나만 바라보는 상황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여유 있게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 그 시간을 즐기게 까지 되었다. 강연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또 다른 신선한 자극이었다.
발표불안이 사라진 이유는 발표=불안이라는 기존의 등식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불안한 상황을 잘 대처했다는 확신이 쌓이면 불안은 점차 사라지고 새로운 짝짓기가 일어난다. 즉 발표는 칭찬, 즐거움이라는 새로운 짝을 만나게 된다. 이질적인 경험 속으로 용기를 내어 과감하게 뛰어들었기 때문에 그토록 두려워했던 강연을 마침내 해 낼 수 있었다. 이제 나는 강연의 달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불안하거나 떠는 일에서는 해방되었다.
‘이번 생에서 발표는 글렀어’라는 말은 이제 효력을 상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