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장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는 바로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이다. 많은 부모들이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책을 읽고, 강연장을 찾아 공부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공부한들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부모 모두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졸업한 전문직 부부의 사연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가 직접 짠 스케줄표를 건네주는 것으로 아이의 하루가 시작된다. 24시간을 철저히 관리한 결과 집중력 저하, 분노조절 문제 등 아이는 심리적으로 불안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입시의 성지(?)로 불리는 강남에서 아이는 열 군데 남짓의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성과’ 와 ‘결과’에만 집착한 부모는 끊임없이 옆집 아이와 비교했고 비교의 끝에는 상처받은 아이, 불안한 부모만 남게 되었다.
입시만을 위해 모든 걸 희생시키는 부모의 왜곡된 가치관과 그 속에서 마음이 병들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연일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가 있었다. 국민적 화두인 ‘사교육’과 부모의 욕망을 낱낱이 해부하고 잔혹한 입시지옥이 낳은 비극을 생생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신계급 사회라고 불러도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학벌이 계급과 연결되는 이 사회에서 입시는 국민 모두의 초대형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사교육 공화국, 대한민국의 민낯을 바라보는 마음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인간은 자유로울 때 가장 편안하고 잠재력도 발휘할 수 있다. 타의로 무언가를 하게 되면 행복하지 않고 성과도 나지 않는다. 아이에게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이 부부는 돈과 열정을 들여 창의력과 상상력을 체계적으로 없애주는 기관에 성실하게 아이를 보냈을 뿐 정작 아이 내면이 병들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빡빡한 스케줄 속에 아이를 밀어 넣고 빈틈없이 관리해야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온갖 사교육을 동원해 지식으로만 두뇌를 빈틈없이 채워버리면 창의력과 상상력이라는 보물이 들어설 자리는 없어진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진 정서적 폭력 앞에서 무너진 아이들은 오랜 시간 고통의 시간을 겪어야 한다. 마음의 상처는 약을 먹으면 금방 낫는 감기처럼 쉽게 치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이 정해 놓은 타임 스케줄에 따라 세상의 주류에 합류하기 위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 의지로 무언가를 하나씩 만들어가고 스스로의 시간을 채워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조선시대 왕 중에 정식 세자 교육을 받은 왕 중에 성군이 된 경우가 오히려 별로 없다고 한다. 부모가 발 벗고 나서서 아이를 밀어준다고 그 아이가 반드시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얘기다.
최근 언론에서 대기업 자녀들의 오만불손한 태도와 갑질이 논란의 도마에 자주 오르고 있다. 부모의 갑질을 보고 자란 자녀가 부모의 가치관을 충실히(?) 학습한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좋은 사람’이 ‘좋은 부모’가 된다. ‘좋은 부모’가 되려고 애쓰는 대신 ‘내가 좋은 인생’을 살면 된다.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고 타인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는 ‘좋은 사람’이 되고자 애쓰면 된다.
부모도 엄연히 하나의 인격체다. 누군가의 ‘엄마’ ‘아빠’라는 정체성 외에도 수많은 정체성으로 살아간다. ‘엄마’라는 역할에만 매몰되어 아이를 향한 감시의 안테나를 사방으로 뻗치느라 정작 자신을 성찰하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잊어버리고 사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24시간 대기조가 되어 아이를 위한 희생을 자처하게 되면 그 결과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로 시작되는 왜곡된 보상심리로 돌아오게 된다. 아이 역시 무거운 부채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제 한 몸 스스로 건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제대로 된 교육이고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작은 마중물 역할만 해 주면 된다.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가기까지 지난한 시간을 함께 버텨주기만 하면 된다.
‘좋은 부모’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좋은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하면 ‘좋은 부모’는 보너스처럼 따라오는 선물이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겨우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