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조금 더 먹은 A가 아직 젊은 B에게 물었다. “자기는 왜 아직 결혼 못했어? 얼굴도 이쁘고 성격도 좋은데 말이야” “네? 아... 전 혼자인 게 편하고 좋아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 Top 3에 들 법한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A와 어디가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대놓고 불만을 터트릴 수 없어 난감한 B사이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사이 “요즘 결혼은 선택일 뿐이야. 촌스럽게 왜 그래?” 라며 중재에 나선 C의 개입으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A는 머쓱해했고 B는 웃지 않았다.
어설픈 대화만큼이나 어설픈 마무리로 끝난 모임이었다. 혼자라는 이유로 B를 결혼시장에서 실격자 취급한 것도 모자라 ‘얼굴도 이쁘고 성격도 좋은데’라는 사족까지 단 A는 한 번도 제대로 혼자였던 적이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혼자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결국 혼자이고 언제든 혼자될 수 있으며 혼자여도 당당할 수 있고 혼자라도 외롭지 않다고도 말해주고 싶었다. 혼자 있으면 무조건 외롭다고 단정하는 사람은 고독에 직면하는 게 두려워 홀로 됨을 회피한 사람일지 모른다.
혼밥, 혼술, 혼행이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등재되기 전에 이미 난 혼밥러, 혼 술러였고 혼행러이기도 했다. 혼자서 당당하게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를 잡은 뒤 메뉴를 주문했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혼자 오셨어요?’라는 사장님의 질문에 쿨하게 ‘네!’라고 대답한 뒤 주위의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한 끼의 식사를 해치우곤 했다. 다른 사람이 뭘 먹는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어 혼밥을 하는 시간은 꽤 행복했다.
전시회나 공연장에서도 자주 혼자였다.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전시회에 동행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춰야 하니 신경이 쓰인다. 온전히 작품에 몰입할 수 없다. 사람마다 꽂히는 작품이 다르고 마음에 닿는 결도 다르다. 동행이 있으면 상대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감정의 여운이 마음에 채 안착하기도 전에 서둘러 다음 작품으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혼자면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롭다. 한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러도 괜찮고 갔던 길을 되돌아 다시 작품 앞에 서도 눈치 볼 일 없다. 흔들리는 감정의 파고를 즐기기 위해 전시관 밖 낡은 벤치에서 오래오래 하늘을 올려다봐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오래전 처음 떠난 해외여행도 혼자였다. 혼자 떠난 이유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몸과 마음이 바싹 말라 부스러기 일보직전, 억울함 반, 오기 반으로 떠난 여행지에서 나는 기필코 혼자를 고집했다. 직장과 가족, 아이들에게서 벗어나 사력을 다해 혼자 이고자 했던 시간이었다. 흐린 하늘과 축축한 대기 속에서 거닐었던 벨기에의 도심 공원과 파리의 센 강 주변을 걸으며 느꼈던 홀가분함은 ‘자유’와 완벽한 동의어였다.
내 안전과 생존을 오롯이 혼자 책임져야 하는 나는 내 몸의 보호자였다. 소지품과 여권을 챙겨야 했고 건강을 위해 아무 음식이나 먹어서도 안 되었다. 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이 처음이라는 데서 오는 긴장과 외로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말하지 않아도 됐고, 누군가의 말에 애써 귀 기울일 필요도 없었다. 나침반과 지도와 시계는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였다.
혼자라서 외롭지 않았다. 초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타인에 대해서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여유가 생겼다. 완벽하게 혼자인 시간 속에서 나 자신과 대화하고 순수한 몰두를 경험할 수 있었다. 다양한 페르소나로 무장한 삶을 사느라 민낯을 잃어버릴 지경에서,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다음 행보를 내디딜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법도 배웠다.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를 세웠던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원래의 나로 복귀할 수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견디는 사람, 외로움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타인과의 깊은 교감도 가능하다. 타인과 소통하고 어울려 산다는 것이 고독한 삶과 상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 지내기 위해 ‘고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진정으로 ‘함께 하기 위해 고독’을 선택한다.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 외롭다.
고독이라는 터널의 끝까지 걸어가서 마침내 그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비로소 혼자서도 외롭지 않고, 혼자서도 괜찮은 세련된 고독자의 삶을 살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도 자신을 잃지 않고 당당할 수 있으며 혼자 있는 게 편해 타인과의 교감을 포기하지 않는다. 외로움의 시간을 견뎌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