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노트북을 챙겨서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동네 카페에는 친구, 직장동료, 학부모 모임을 가장한 친목도모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든다. 아주 드물게 부부 둘만이 카페를 찾는 경우도 있다. 옆자리에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자리를 잡았다. 부부라고 단정 지은 이유는 오랜 세월 서로에게 익숙해진 사람 특유의 무덤덤함과 나른함이 온몸에 배어 있어서였다.
호기심이 동해 자꾸만 눈길이 갔다. 두 사람은 자리를 잡은 뒤 주문을 위해 자리를 떴다. 잠시 후 매대에서 빵 몇 개와 커피를 챙겨서 왔다. 대화는 한 마디도 없었고 눈짓과 몸짓만으로 모든 게 이루어졌다. 이어서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기 시작했다. 여전히 한마디 말도 없었다. 분명 몸은 한 공간에 있었지만 마음은 각기 다른 세상에 있는 듯, 마치 앞에 사람이 없다는 듯 먹는 행위에만 집중했다. 만나도 만나지 않은 상태, 연결되어 있어도 고독한 상태로 각자의 묵언수행을 이어갔다. 10여 분의 시간이 흐른 뒤 말없이 빵만 먹던 부부는 ‘이제 그만 가자’는 단 한 마디 말과 함께 자리를 뜨고 말았다.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웃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지도 모른다.
칼릴지브란은 ‘분리되어 있음의 지혜’에서 ‘당신들 부부 사이에는 빈 공간을 두어서 당신들 사이에서 하늘의 바람이 춤추도록 하게 하라’ 고 했다. 사랑하되 포개지 말고, 각각의 잔을 채우되 한 개의 잔으로 마시지 말고, 마음을 주되 상대방 고유의 세계는 침범하지 말라고 했다. 서로 떨어져서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나무가 잘 자라듯 부부 사이에도 적절한 거리, 심리적 공간이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하지만 관계의 권태기에 접어든 부부에게는 이 말이 와 닿지 않는다. 부부 사이의 빈 공간은 이제 너무 넓어져서 시베리아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늘 붙어있던 두 사람의 거리는 타인보다 더 멀어졌다. 각자의 잔만 채우기에 바빠 상대방의 세계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어진지 오래다.
몇 번의 강산이 바뀌는 세월을 함께 하다 보면 소설가 정이현의 말대로 “대화가 없어도 음악이 없어도, 라디오 소리가 없어도, 사랑이 없어도, 세상 모든 소리와 빛이 사그라진 곳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관계”가 부부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때가 온다. 더 이상 간절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상태가 된 부부의 모습은 욕망 대신 수십 년의 관성으로 유지되는 메마른 관계의 민낯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 때 자석처럼 강하게 서로를 끌어당겼던 낭만적인 ‘연인’들은 남루하고 구체적인 생활의 냄새가 가득 묻은 ‘현실 부부’로 바뀌었다.
‘세월’이라 불리어지는 단어에 값하는 숱한 삶의 풍경이 어지럽게 쌓여 가는 동안 눈에 씐 콩깍지가 빠져나가고 현실의 그(그녀)를 마주하게 된다. 탄탄한 복근과 에스 라인을 자랑하던 몸매는 남녀 구분 없이 공평하게 D라인으로 변했고 검고 무성하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군데군데가 비어있는 잿빛으로 바뀌었다. 외모만 변한 것이 아니다.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사라지고 아무렇지도 않은 무덤덤함만이 남았다. 부부는 이제 ‘오직 한 사람’에서 수없이 많은 ‘세상 속의 한 사람’이 되었다.
생각이 비슷하고 느낌이 통해서 서로에게 끌렸던 것이 연애시절이었다면 결혼생활은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깨닫는 시간이다. 콩깍지가 벗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인생의 아이러니는 결혼생활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지겹도록 돌아가는 대관람차처럼 20년, 30년 돌다가 천천히 늙어가는 생에 이르는 것이 ‘부부’라는 관계의 종착역일까.
살다 보면 원치 않는 이별을 겪거나 경제적 문제로 인한 험난한 파도를 넘나들며 천당과 지옥을 오갈 때가 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식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에서 근심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평정을 가장한 채 살아가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매일 소리 없는 아우성이 일렁인다. 한때는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했던 ‘특별한 존재’였지만 이젠 무덤덤한 ‘보통의 존재’가 되어 버린 사람들. 특별히 잘못한 사람도 없고 뚜렷한 이유도 없다. 익숙한 관계가 처음에는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느껴지지만 변화 없고 자극 없는 관계가 점점 지루해진다.
관계 자체가 변한 게 아니라 관계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변한 것이다. 세상살이에 닳고 닳아 인생의 모서리가 무디어진 이들에게 내일은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수많은 하루에 불과하고 관성에 의지해 무한 반복되는 삶은 지루한 일상, 익숙한 삶의 풍경이 되었다.
미국 코넬대 인간행동연구소에서 2년간 5000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해 조사했다. 연구결과 18개월에서 30개월이면 뜨겁던 사랑이 식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연구의 제목은 '사랑은 900일간의 폭풍'이었다. 영화나 소설 속에 펼쳐지는 열정적인 사랑은 사랑의 초기 단계이다. 이 단계가 지나면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사랑에 빠진 후 1년이 지나면 사랑의 감정은 50%가 사라지게 되고, 이후 계속 낮아진다고 한다.
도파민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사랑에 빠지면 도파민 분비가 활발해서 눈에 콩깍지가 씌워지지만 시간이 지나 도파민 분비가 줄어들면 사랑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해요?’라는 상우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사랑이 변하는 이유다. 사랑의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권태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권태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랑에도 생로병사가 있음을 인정할 때 새로운 관계의 모색이 가능하다. 권태에서 빠져나오려 애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소소한 일상의 변화를 통해 서로에게 조금은 낯선 모습으로 다가가는 건 어떨까? 평소 내가 알던 그 사람에게서 낯선 향기를 발견할 때 그 향기가 권태로움을 태워버릴지도 모른다.
저만치 미뤄두었던 취미생활을 통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경험을 통해 또 다른 너를 보는 느낌은 낯선 즐거움을 선사한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의 색다른 모습은 무디어진 사랑의 감각을 다시 돌아오게 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더 힘껏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역으로 사랑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