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소금 뿌리세요?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몇 년 전 건강이 좋지 않아 직장에 병가를 내야 할 일이 생겼다. 사유를 설명한 뒤 병가를 써야 할 상황임을 얘기하고 이해를 구했다. 직장 상사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을 허락했다. 공식적으로 쓸 수 있는 기간이 물론 있지만 그 기간을 온전히 쓰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상황을 참작해 최소한의 요청을 한 것인데 거기서 또 얼마간의 기간을 삭제당했다. 물건 값을 깎는 것도 아니고 아픈 사람에게 휴양의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은 가혹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직원에 대한 의례적인 배려조차 없는 냉정함은 결국 서러움과 화를 폭발시키고 말았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심정으로 서운한 마음을 드러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상처에 소금 뿌리세요?”라고 분노와 억울함을 담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제야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했는지 혹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아니면 알아서 긴다고 생각하고 적당히 무시하려 했는데 마음대로 안 된다고 느껴서인지 부랴부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인간성은 이미 밑바닥까지 훤히 드러난 후였다. 쉬고 싶은 만큼 쉬라면서 이미 쏟아진 물을 주워 담으려는 헛된 시도를 했지만 내 마음의 온도는 차갑게 식어버린 후였다.


어렵게 얻은 휴가였지만 쉬는 동안에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퇴원하자마자 바로 직장으로 복귀했다. 고생했다는 의례적인 인사를 던진 상사는 곧 내가 해야 할 일을 상기시켰다. 그동안 자리 비운 것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느끼면서 나는 그전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내가 겪었던 경험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고 조직의 관점에서는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비효율적인 일일 뿐이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상을 이어갔다. 서럽고 외로웠지만 모든 것은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조직의 차원에서 개인은 한낱 부품에 지나지 않았다. 존중받아야 할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조직이 잘 돌아가기 위한 자원일 뿐이었다.


다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억울하고 아프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아팠거나, 아플지 모르며, 언젠가는 아프게 된다. ‘아픈 몸’은 나와 상관없는 누군가의 몸이 아니다. 하지만 그때 나는 고립된 섬처럼 철저히 혼자였다. ‘아서 프랭크’는 그의 저서 <아픈 몸을 살다>에서 “조직은 몸을 살아온 역사가 있는 삶으로 보지 않으며 생산의 자원으로만 사고한다. 따라서 조직에서 아픈 사람이 받는 공감에는 한계가 있다" 고 했다.


언감생심 공감까지 바라지도 않았다. 상사는 자신은 평생 한 번도 아파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아프지 않을 사람처럼 말했다. 갑작스럽게 생긴 질병으로 적잖이 당황해하던 차였기에 미세한 자극에도 마음은 쉽게 기스가 났다. 상사의 말과 행동은 크고 작은 동심원을 그리며 마음 깊숙이 퍼져 나갔다.


공감은 타인의 입장에 자신을 포개 놓고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다. 인간이기에 가능한 능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공감능력이 결핍된 자들이 주변을 병들게 하는 일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타인을 아무렇지 않게 희생시킨다. 개인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일원으로, 일개 수단으로만 취급한다. 그 결과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은 자존감이 급격히 하락하고 정서적으로 극심한 불안을 겪게 된다.


아픈 사람은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가정에 소홀해지고 직장에서도 일정 기간 의무를 다하지 못함으로써 무책임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퇴원 후 직장에 복귀하고 나서 내가 더 열심히 일했던 이유였다. 요가나 필라테스로 매끈한 몸을 만들고 성형으로 배우 같은 마스크를 열망하는 것은 모두 몸이 통제될 수 있고, 통제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실패하거나 건강을 잃은 것은 통제에 실패했다는 의미이고 이는 사회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지탄의 대상이 된다. “사회는 환자 자신이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몸이 통제할 수 없게 변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질환을 본다. 따라서 병에 도덕적 실패라는 의미가 실리게 된다” 는 ‘아서 프랑크’의 지적은 정확했다.


인간인 이상 우리 몸은 어느 순간 통제에서 벗어나게 되어 있다. ‘질병’과 ‘노화’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누구나 찾아오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몸은 의사의 치료나 환자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아서 프랭크’의 말대로 ‘내 몸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너머에, 그저 존재할 뿐’이다.


내 상처 못지않게 타인의 상처에도 민감해야 한다. 예민한 사람은 타인의 상처도 재빨리 알아챈다. 상처의 깊이와 넓이와 끔찍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남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굳이 아파보지 않고도 ‘상상’할 수 있어야 사람이다.


사람이 아닌 사람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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