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싸! 순간 말문이 막혔다
교환학생으로 스페인으로 떠난 큰 아이가 보고 싶어서 책장 한구석에서 오래된 사진첩을 꺼냈다. 아이와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이 박제된 짐승처럼 그 시간에서 멈춰 있었다. 베레모를 쓰고 한껏 멋을 부린 아이, 앙증맞은 표정으로 사탕을 먹고 있는 사진,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울음을 터트린 모습 등 추억의 장면들이 하나 둘 소환되었다.
내가 처음 글이란 걸 쓰게 된 것은 큰 아이와의 교감을 위해서였다. 논리적인 아이와 감정적인 엄마 사이의 대화는 자주 냉랭하고 싸한 분위기로 막을 내리곤 했다. 아이의 모난 부분을 깎아서 둥글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각진 모서리는 부드럽게 깎아내고, 튀어나온 곳은 정으로 두드려 눈에 띄지 않게 해 주고 싶었다. 둥글면 둥근 대로, 모난 것은 모난 대로 그 자체가 아이의 고유한 특성임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어리석은 엄마는 원하는 모습으로 다듬으려고만 했다.
‘모난 돌’ 취급당한 아이 입장에서는 참으로 억울한 노릇이었을 것이다.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어쩌란 것인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자신의 방식대로 끌고 가려는 엄마와 호락호락하지 않은 아이 사이에서 발생한 균열은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다. 접점을 찾지 못하고 고민하던 중 말보다는 글이 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은 한 번 입 밖으로 나오면 주워 담기 힘들지만 글은 여러 번의 퇴고를 거쳐 정제된 상태로 전달이 되기 때문에 실수가 적을 것 같았다. 글의 힘을 믿어 보기로 했다. 다행히 예상은 적중했고 글을 통한 소통은 모녀 사이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 주기 시작했다. 때를 놓쳐 버린 말, 차마 하지 못한 말, 말이 되어 나가지 못하고 가슴에 갇힌 말들을 종이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았다. 종이에 담긴 엄마 마음은 아이 마음에도 돋을새김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끝없이 평행선만 달리던 모녀를 이어준 것은 ‘글’이라는 매개체 덕분이었다.
큰 아이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독박육아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이 셋을 혼자서 키우느라 하루하루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세 아이 모두 성격도 제각각이었고 하는 짓도 달랐다. 커갈수록 다양한 변수가 추가되어 육아 방정식의 난이도는 나날이 정점을 찍고 있었다. 하지만 세 아이들에게도 공통분모가 있었으니 바로 잠이 없고 잠귀가 예민하다는 것이었다. 부모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난제가 아닐 수 없었다. 둘째와 셋째는 두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 더더욱 힘들었다. 보채는 둘째를 겨우 재우고 까치발을 하고 방을 빠져나오는 순간, 막내가 깨서 울어대는 바람에 간신히 잠이 든 둘째까지 덩달아 깨서 쌍으로 울어대면 내 영혼은 머나먼 은하수로 날아가 버렸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기에 큰 아이에게 각별히 주의를 주었다. '외출하고 돌아올 때는 절대로 벨을 누르지 말 것! 반드시 문을 살짝 노크할 것!'이라는 엄명을 내렸다. 요즘은 전자키로 조용히 문을 따고 들어오지만 당시에는 전자키가 지금처럼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전이었다. 잠귀 예민한 아이들이 벨 소리를 들으면 바로 깨기 때문에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한동안 큰 아이는 내 말 대로 잘 따라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달이 나고 말았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잠과의 한 판 전쟁을 치른 후 간신히 둘을 재웠는데 갑자기 벨 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내 귀에 들어온 현관 벨 소리는 에밀레 종소리보다 더 크고 웅장했다. 혼비백산해서 뛰어나갔더니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큰 아이였다. 동생들은 이미 잠에서 깨서 자지러지게 울어대고 있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꼭지가 돈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란 걸 몸으로 터득한 순간이었다.
인정사정 보지 않고 소리부터 질렀다. “엄마가 그렇게 당부했는데 벨은 왜 눌렀어? 응?” 아이가 미처 대답할 새도 없이 고함 소리, 부라린 눈, 등짝 스매싱을 포함한 야단 3종 세트가 속사포처럼 날아갔다. 날벼락을 맞은 아이는 울음을 참느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답답한 모습에 더욱 화가 치밀었고 더 큰 소리로 아이를 추궁했다. 융단폭격이 한참이나 이어진 후에야 가출했던 제정신이 복귀했다. 그때서야 큰 아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며칠 동안 내가 계속 지켜봤더니 학원에 갔다 오는 시간에 동생들이 자지 않고 깨어 있었어. 그래서 동생들 자는 시간이 바뀐 것 같아서, 이젠 괜찮겠지 싶어서 벨을 눌렀어” 아뿔싸!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이가 엄마의 당부를 무시하고, 충동적으로, 생각 없이 벨을 누른 게 결코 아니었다. 자기 나름대로 며칠 동안 동생들의 수면시간을 꼼꼼히 체크해 보고 신중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당시 여섯 살의 어린 나이였음에도 여러날을 관찰하고 분석해서 고민 후 벨을 누른 것이었다. 너무 미안했다. 이 사건 이후, 아이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애썼다. 여러 번 생각하고 다각도로 고민한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동생들 때문에 투정 한 번 제대로 부리지 못하고 일찌감치 철이 든 아이였다. 육아에 지쳐 나날이 피폐해져 가는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동생을 둘이나 둔 큰 아이의 고충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동생을 본 큰 아이의 심정을 ‘폐위된 황제’에 빗대어 얘기했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순식간에 나락으로 추락한 큰 아이의 심정이 ‘폐위된 황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만큼 상실감이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육아전쟁을 치르는 동안에는 한 살이라도 어린아이에게 관심이 더 갈 수밖에 없었고 동생과 비교할 때 이미 다 큰 어른처럼 느껴지는 큰 아이에게서 서둘러 손길을 거둬들였다. 이제는 안다. 동생을 본 큰 아이 역시 똑같이 어린아이였다는 것을.
피곤에 지친 엄마를 보며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 놓고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타고난 내향성으로 감정 표현도 별로 없었다. 아이는 커갈수록 점점 자기표현에 인색해졌고 속을 몰라 애만 태우는 동안 소통은 점점 힘들어졌다. 육아에 지쳐 큰 아이의 마음 밭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사이 아이는 결핍을 채우려고 홀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와 다른 아이의 기질도 모녀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데 기여했다.
화성에서 온 엄마는 금성에서 온 아이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은 냉정하고 야박하다고 몰아세웠고, 창의적인 모습은 엄마 속을 뒤집어 놓는 엉뚱한 행동으로 받아들였다. 모난 돌처럼 도드라져 보였지만 속은 누구보다 상처 받기 쉬운 여린 아이였다. 서로 부딪치고 상처 받으며 실랑이를 벌이는 세월이 쌓여가는 동안 조금씩 아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그나마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다면 온전히 큰 아이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힘들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부모로서 고민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질문을 던져준 아이였기 때문이다. 아이마다 각기 다른 빛깔을 타고났고 부모는 아이가 가진 고유의 빛깔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것도 큰 아이가 준 선물이었다.
각지고 날카롭고 모서리진 돌도 그 자체로 소중하다. 둥글둥글한 무난함도 좋지만 날카롭게 벼린 날이 어쩌면 세상을 변화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까칠하지만 생각 깊은 큰 아이가 그래서 고맙고 이쁘다. 철부지였던 아이가 어느새 커서 먼 타국에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다. 별로 해 준 것 없는 엄마의 양육 덕분(?)인지 일찌감치 홀로서기를 터득한 큰 아이가 오늘따라 유난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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