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더 거짓말을 했다가는 회초리로 맞을 줄 알아라

4차산업과 상상력의 상관관계는?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더 이상 새로운 책이 들어갈 공간이 부족하게 되었을 때 책장 정리를 시작했다. 잘 읽지 않는 책은 버리거나 뒷 쪽으로 빼서 자리를 옮긴 뒤 확보된 공간에는 신간이나 자주 보는 책으로 다시 채웠다. 버려야 책 중에는 아이들 책도 있었다. 어느새 그림책이 필요치 않는 나이로 훌쩍 커 버린 아이들이지만 책을 버리기가 아쉬워 정리할 때마다 미뤄두곤 했다. 그림책 속의 아름다운 문장과 유려한 그림은 아이들의 마음에만 동심의 씨앗을 뿌린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도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여유를 주었고 삶의 지혜와 통찰이라는 뜻밖의 보물을 안겨주기도 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작업을 하던 중에 맨 아래층에 숨어 있던 <지각대장 존>이 눈에 들어왔다. 까만 학사모를 쓴 몸집이 거대한 선생님이 물에 흠뻑 젖은 아이를 혼내는 그림이 인상적인 책으로 우리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던 책이었다. 정리는 잠시 미뤄둔 채 거실 바닥에 자리를 잡고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지각대장 존>의 주인공 ‘존 패트릭 노먼 맥 헤너시’는 학교에 갈 때마다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악어가 책가방을 물어가기도 하고 사자에게 엉덩이를 물어 뜯기고, 거대한 파도가 존을 덮치기도 한다. 지각을 한 이유를 설명하면 선생님은 존이 거짓말을 했다면서 그 대가로 “악어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반성문을 300번 쓰라는 벌을 내린다. 선생님한테 아무리 사정을 해도 “이 동네 하수구엔 악어가 살지 않아! 사자도 살지 않고, 거대한 파도도 없어! 한 번만 더 거짓말을 했다가는 회초리로 맞을 줄 알아라.” 는 매정한 대답만 돌아왔다.


보편적인 사실과 상식의 잣대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세계에서, 존의 경험은 얼토당토않는 일이었다. 그 때 마다 선생님의 엄중한 벌이 내려진 이유였다. 아이들은 때로 황당무계한 거짓말을 한다. 어른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관심받으려는 마음에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아이다운 상상력과 호기심에 창의성이 더해져 기발한 거짓말이 탄생하기도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면 당황스럽다. 나쁜 짓임을 알려주기 위해 곧바로 훈육에 들어간다.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거짓말쟁이가 되고 나쁜 사람이 된다고 위협하며 아이들이 엉뚱한 거짓말의 세계에 머무르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그림책 속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존의 황당무계한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그때마다 가혹한 벌을 내렸다. 하지만 아이 마음 속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학교 가는 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연휴가 껴 있어서 학교를 며칠 쉬었거나 방학이 끝난 후 현관문을 나설 때, 숙제를 미처 다 하지 못한 채 학교를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중학생이었던 어느 날 학교가 너무 가기 싫어서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학교를 쉬었던 기억이 내게도 있었다.


거짓말을 그냥 두고 보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거짓말을 했다고 무조건 야단치기 보다는 아이의 말을 신뢰하고 이해한다는 마음을 먼저 전달해 보면 어떨까. 눈에 보이는 뻔한 거짓말일지라도, 황당무계한 아이들의 상상력을 따라 잡기 힘들지라도 부모가 먼저 마음을 받아 준다면 아이들의 무한한 세상은 날개를 달고 비상할 것이다.


<지각대장 존>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사실 여부가 아니다. 악어와 사자와 거대한 파도는 아마도 존이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학교 가기 싫은 마음에서 튀어나온 거짓말일 것이다. 늦잠을 잔 ‘존’의 머릿속에는 ‘사자가 내 엉덩이를 물었으면 좋겠네.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갔으면 좋겠어. 그래서 학교에 늦어도 야단을 맞지 않았으면 좋겠네'라는 아이다운 기발한 상상력의 둥지가 하나, 둘 자리잡기 시작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루틴이 있었다. 잠들기 직전 자리에 누워 낮에 읽었던 동화 속 세상을 상상하는 일이 그것이었다. 상상의 세계에서는 뭐든 가능했고 무엇이라도 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디즈니 성의 공주가 되어 멋진 왕자님과 결혼하는 꿈을 꿨고 마술봉을 휘두르는 마법사가 되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기도 했다. 아름다운 꽃으로 둘러싸인 비밀의 화원에 몰래 들어가기도 했으며, 시계를 찬 이상한 토끼를 따라 끝도 없는 굴 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기도 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는 그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사소한 거짓말은 아이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훌륭한 도피처가 된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는 환상의 시간과 현실에서 잠깐 벗어나서 쉴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이 아이들에게도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동화 속 이야기에 쉽게 빠져드는지도 모른다.


<지각대장 존>의 결말은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는 등굣길에 선생님이 고릴라에게 붙잡힌다. 선생님이 외친다. “난 지금 커다란 털북숭이 고릴라한테 붙들려 천장에 매달려 있다. 빨리 날 좀 내려다오.” 하지만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이 동네 천장에 커다란 털북숭이 고릴라 따위는 살지 않아요.” 라고 대꾸한다. 존의 사이다 발언에 속이 시원해진다. 하지만 곧바로 씁쓸한 마음도 든다. 너무 빨리 어른의 세계로 편입해 버린 존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 아이는 더 이상 상상 속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하고 싶은 얘기도 가슴에만 묻어둘 뿐 더 이상 꺼내놓지 않을 것이다. 존의 선생님처럼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 현실적이고 무미건조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우리가 그랬듯이.


아이들의 유년이 끝나는 시점은 아마도 산타클로스의 실체를 눈치채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일 것이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루돌프가 끄는 눈썰매를 타고 선물이 가득한 보따리를 둘러멘 산타클로스를 기대하며 방문 앞에는 저마다 가진 것 중에 제일 큰 양말을 걸어둔다. 우리 집 세 아이들도 그랬다. 유독 호기심이 많았던 둘째는 산타할아버지를 직접 보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졸린 눈을 비비며 늦게까지 버텼지만 결국은 소파에서 잠이 들곤 했다. 잠든 아이를 안고 침대로 옮겨 눕히던 기억은 아직 생생한데 둘째는 이제 산타클로서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부모는 아이들의 상상과 기억을 지키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동심의 세계를 최대한 유예시키고 싶었던 마음에 매년 성탄절마다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가 허구가 아님을 열과 성을 다해 상기시켜 주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우리 아이들을 ‘바보’라고 놀릴 때까지 산타 할아버지가 자기 아빠란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덕분에 아이들의 유년이 조금은 유예되었다고 믿고 있다.


4차 산업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과학기술, 교육 등 4차 산업이 언급되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4차 산업시대는 ‘초연결, 초지능 시대’ 일뿐 아니라 ‘상상력의 시대’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이 흉내 내기 어려운 것 중 하나도 이것이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는 미래사회에서 지속적인 창직을 위해 필요한 것 역시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4차 산업혁명 담론에서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독서와 상상력’이 병기되어야 하는 이유다.


애플의 스마트폰이 잡스의 상상력에서 탄생했듯이 혁신적인 기술이나 발명품도 상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루어지기 어렵다. 독서인구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우리의 현실은 상상력의 빈곤으로 이어지고 상상력의 빈곤은 미래사회의 경쟁력을 의심스럽게 한다. 기술 발달이 가져온 4차 산업혁명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술’ 중심이 아니라 ‘사람’ 이 중심이 되는 사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문학자 조너선 갓셜은 인간을 ‘호모픽투스’ 즉, 이야기의 동물이라고 했다. 이야기는 우리 삶의 도구이자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우리는 ‘이야기’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인간과 삶을 이해한다. 이야기를 통해 타자에게 공감하고 타자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문학의 부고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가운데 현대인들은 점점 상상력을 잃어가고 있다. 상상력이 없는 삶은 황폐하다. 서사의 세계에서 멀어지면 다시 되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다음 날에도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가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지각대장 존>의 마지막 문장이다. 상상력이 거세당한 채 메마른 현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존의 느린 발자국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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