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로 태어난 죄

한승태 <고기로 태어나서>

굳이 소설적 상상력까지 동원할 필요가 없었다.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는 ‘클론’이라 불리는 복제인간을 다룬 작품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클론들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격리된 장소에서 성장한 후 인간을 위해 장기를 적출당하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된다. ‘클론’의 자리에 ‘동물’을 대입한다면 굳이 소설적 상상력까지 동원할 필요가 없다. 여기, 지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승태 작가의 <고기로 태어나서>는 닭, 돼지, 개를 사육하는 식용 동물농장 아홉 곳에서 작가가 직접 일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전자레인지 크기의 비좁은 케이지 속에 닭 네 마리가 마치 종이처럼 구겨져 들어가 있다. 극도로 좁은 공간에서 닭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서로를 할퀴고 밟으며 24시간 아수라장 속에 놓인다. 그나마 살아남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수컷은 태어나자마자 바로 거름으로 돌아가야 하는 참혹한 운명이다. ‘알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수컷 병아리는 자루에 담겨서 비료를 만드는 발효기로 들어가게 되는데 발효기의 날카로운 칼날이 돌아갈 때도 병아리의 삐약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현세는 지옥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양돈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새끼를 낳는 모돈이 사는 스톨로 불리는 케이지는 모돈이 눕거나 일어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좁다. 고개를 돌리는 것도 어려운 스톨 속에서 돼지는 일곱 번의 출산을 하면 효용가치를 다하게 되고 곧바로 도태된다. 돼지를 살찌워 키우는 비육 농장 역시 철저히 경제논리에 입각해서 돌아간다. 들인 사룟값 만큼 체중이 붇지 않으면 바로 바닥에 패대기 쳐진다. 곧이어 분뇨장에 버려진 돼지는 금방 죽지 않고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몇 시간을 더 보낸 뒤에야 고통스러운 생을 마감할 수 있다. 참혹한 광경이 일상인 농장의 동물들에게 현세는 지옥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곳을 ‘농장’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면 말이다.


‘효율성’과 ‘경제성’이라는 두 바퀴로 돌아가는 자본주의의 괴물에 쫓기는 닭과 돼지, 그리고 개의 삶은 우리가 끼니때마다 마주하는 밥상을 돌아보게 한다. ‘동물복지’라는 거대 담론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고 어설프게 채식을 하자는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미각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20년이나 살 수 있는 수명을 한 달로 앞당겨 때 이른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육식이 문제가 아니라 고기를 만들기 위한 폭력적인 시스템을 이제는 돌아봐야 할 때이다.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동물답게’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배려를 해야 한다.


‘동물농장’이라는 암담한 프리즘을 통해서 ‘인간다움’에 대해 다시 물어야 한다


오직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삶만을 중심에 두고, 아수라장이 된 동물농장에서 들려오는 동물들의 비명소리에 더 이상 귀 막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타자’로 규정하고 인간이 정한 경계선 밖으로 매몰차게 내모는 행위는 스스로를 ‘비인간’ 화하는 아이러니 속에 빠지게 한다. ‘동물농장’이라는 암담한 프리즘을 통해서 우리는 역으로 ‘인간다움’에 대해 다시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연밥이 연꽃이 되기 위해서는 2000년의 시간을 기다리기도 한다. 하나의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은 수많은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일이고 필연에 필연이 맞닿아야 겨우 이루어지는 일이다. 생명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단 얘기다.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너희 존재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단다'


육식동물로 태어난 한계에 갇힌 인간이 고기를 먹지 않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살이 찌지 않는다’ 거나 ‘암컷이 아니다’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동물의 목숨을 뺏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의 마음과 동물의 마음이 다르지 않고 모든 생명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존중받고 보호받아 마땅한 귀한 존재임을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건 아닐까?


‘너희들은 아주 오랫동안 어두운 그림자 속에 머물러 있었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되도록 너희 존재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단다’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중에서...


소설 <나를 보내지 마>에서 인간들은 불편한 클론의 존재를 마주하지 않으려 했다.

우리가 지금 ‘고기’들의 존재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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