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이어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SNS 활동을 꾸준히 해 온 덕분에 꽤 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일상을 공유하고 사진을 찍고 보정하는 재미에 시작했지만 공들인 사진 덕분인지 당신은 어느새 인플루언서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얻는 수업이 본업을 훨씬 초과하게 된 어느 날 당신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갑자기 닥친 팬데믹 사태로 인해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이 어려워지면서 얼굴을 마주 보고 소통하는 일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를 확인받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가 있습니다. 대면의 인간관계가 제한되고 비대면이 일상화되는 시대를 맞아 SNS의 영향력은 오히려 커졌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가상현실에서 친구를 맺고 그들과 소통하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플랫폼을 통한 수익창출은 자연스러운 결과였습니다. 사용자들은 좋아하는 인플루언서의 착장을 참고하고 연예인이 추천하는 주얼리를 구매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실패 확률도 낮다고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원하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수많은 광고가 우후죽순처럼 화면을 가득 메우는 상황에서 나한테 맞는 상품을 찾는 일은 모래사장에서 진주알 찾기나 마찬가지이기입니다. 차라리 인플루 엔서 검색을 통해 그들이 보여주는 라이프 스타일을 참고하는 게 훨씬 더 쉽고 현명해 보입니다. 광고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정작 나에게 맞는 상품을 고르는 일은 혼란을 넘어 결정장애만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인기가 경제적인 부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이제 광고시장은 공중파 방송이 아닌 유명 유투버나 수십만 팔로워를 거느린 인스타 그래머가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소통과 관계 맺기로 소박하게 시작된 SNS는 이제 상업용 목적을 위해서도 불가피한 선택이 되었습니다. 오프라인 쇼핑은 온라인 쇼핑으로 대체되었고 SNS는 상업용 플랫폼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인스타그램도 나날이 팔로워가 늘면서 광고 요청이 쇄도했고 어느새 직원까지 두고 촬영, 편집을 하는 회사로 성장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경제적인 안정을 이룬 당신은 이제 돈 걱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일상은 어느새 인스타그램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을 찍고 전문가의 보정을 거치면 적절한 타이밍에 콘텐츠를 올리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을 위해 여행을 떠나고 인스타그램을 위해 맛집을 다닐 정도로 당신의 삶은 플랫폼에 종속되기 시작했습니다. 멋진 공간에서 화려한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 인스타그램 상의 페르소나와 달리 실제 당신의 삶은 공허하고 외로웠습니다.
가족 외에는 특별히 만나는 사람이 없습니다. 댓글에 민감한 당신은 타인의 평가가 두려워 외출도 자제하게 되었습니다.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사진 속의 당신과 실제의 당신 모습과의 괴리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누가 알아볼까 봐 연예인처럼 선글라스와 모자로 가리지 않으면 거리로 나서기 힘들었습니다. 당신은 거울 속의 당신 모습을 보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카메라 앱을 통해서만 당신을 확인합니다. 현실의 당신은 잡티 없는 매끈한 피부도 팔등신의 에스 라인도 갖지 못해서입니다.
페르소나는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이 만든 개념으로 어릿광대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융에 따르면, 페르소나가 있기 때문에 개인은 생활 속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반영할 수 있고 자기 주변 세계와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개의 가면을 바꿔 써 가면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자식일 때, 지인들과 있을 때, 직장에서 일을 할 때 당신의 모습이 각기 다른 건 이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은 가상공간에서의 페르소나를 하나 더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실제의 당신 모습과 는 많이 다른 온라인 공간에 최적화된 아바타를 통해 당신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인친’(인스타 친구)은 ‘실친’(실제 친구)과 많이 다릅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모습만 노출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신이 노출한 모습에 대해 무수한 ‘인친’들의 평가와 비판이 뒤따릅니다. 좋아요와 댓글 수, 팔로워 수라는 정량적인 평가 외에도 댓글의 내용을 통해 당신에 대한 정성적인 평가까지 이루어집니다. 처음 악플이 달렸을 때는 ‘그럴 수 있지’라고 여유 있게 받아들이거나 분노를 삭이며 감당하기도 했지만 팔로워 수가 늘어날수록 악플도 늘어나는 상황이 점차 버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당신의 눈에는 긍정적인 댓글은 들어오지 않았고 비난하고 평가하는 반응에만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당신은 더더욱 현실과는 거리가 먼, 꾸며진 당신의 모습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글보다는 사진과 영상에 초점을 두는 인스타그램의 특성상 사용자들은 당신이 업로드하는 사진과 영상을 당신의 전부로 여기게 됩니다. 소통의 도구가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당신의 페르소나는 더욱 아름답고 환상적인 모습에 집착하게 됩니다. 이상화된 모습과 당신의 진짜 자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당신은 우울과 공허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의 페르소나는 당신의 무수한 모습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환상의 세계를 박차고 나와 현실에 발을 디디고 설 때 진정한 당신 자신과 조우할 수 있습니다. 보정된 사진 대신 거울을 다시 바라볼 수 있을 때 당신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자식으로서의 페르소나, 직장인으로서의 페르소나, 친구로서의 페르소나와 마찬가지로 인스타그램의 페르소나일 뿐임을 인정하는데서 현실세계와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민낯이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가족과 친구 곁으로 돌아가서 건강한 민낯을 마주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