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파티,삶은 계속됩니다
당신은 요즘 부쩍 삶이 허무하다고 느낍니다. 살아온 삶의 궤적을 되돌아봐도 의미가 없는 것 같고, 앞으로도 당신 삶이 행복해질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무의미한 시간을 평생 견디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공포감마저 밀려옵니다. ‘내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질문은 당신을 당혹스럽게 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이 이어집니다. SNS 속 지인들과 친구들은 하나같이 멋진 공간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을 만끽하는 듯 보입니다. 초라한 내 인생이 하찮아 보이고 비참한 생각까지 듭니다.
유복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당신은 대학교육을 마쳤고 전공을 살려 공기업에 취업을 했습니다. 회사 사람들과 모두 잘 지내는 건 아니었지만 때때로 회식도 하고 주말에는 따로 만나는 사람도 몇몇이 있습니다. 특별히 행복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행한 일을 겪은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행복한 인생’이나 ‘의미 있는 삶’이란 프레임은 우리 삶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삶에 큰 의미가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겁니다. 70대의 나이에 유수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은 ‘윤며든다’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할 정도로 연기 못지않게 그녀의 어록 또한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계획 없어요. 인생은 계획대로 안 되더라고요. 그냥 하루하루를 나 하는 일 열심히 하고 있으면 뭐 종착역으로 가는 거 아니겠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오스카 상을 거머쥔 그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한 그녀의 답입니다. 더 열심히 해서 또 다른 작품에 도전하겠다거나 다음에는 주연상을 받겠다거나 하는 계획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멉니다. 연기를 통해 인생에 큰 의미를 찾을 것만 같은 대배우도 인생은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무의미에 낙심하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심하면 할수록 당신 삶은 더 깊은 나락을 헤매일 수 있습니다. 큰 의미를 부여하려 할수록 의미의 부재만 확인할 뿐입니다. 삶의 의미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의미부여에 대한 강박으로 삶이 더 무거워질 뿐입니다. 마음은 힘들어지고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스스로에게 가혹하게 굴게 됩니다.
SNS에 경쟁적으로 올라오는 화려한 사진은 일주일 중에 겨우 한두 시간, 잠깐의 행복일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올리다 보니 모든 사람의 매일매일이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이 들뿐 당신 역시도 일주일에 한두 시간쯤은 느긋하고 행복한 일상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만 약속이 없고, 당신만 여행을 못 간 것이 아닙니다. SNS 속 지인들도, 그리고 당신도 보이지 않는 일상 속에서는 무던히 노력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한두 장의 사진으로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미루어 짐작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당신은 열심히 살았고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루하루 버티고 견디다가 한 숨 돌리며 마시는 따뜻한 차 한잔에 행복해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벚꽃을 바라보며 문득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1년 365일 매일매일이 행복할 수도 없고, 매 순간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행과 불행을 오가며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일상 그 자체가 생의 의미는 아닐까요.
‘왜 살아야 하나?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어떻게’로 바꿔보세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놀아야 할까?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라고 말입니다. ‘어떻게’가 아닌 ‘왜’에 집중하게 되면 삶이 꼭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 갇히게 됩니다. 그렇지 못한 내 인생은 초라하게 여겨져 삶 전체를 부정하게 됩니다. 깊은 우울감은 샴쌍둥이처럼 따라붙게 되겠지요.
삶의 의미는 거창한 목표나 최종 결과물에 있지 않습니다. 있다면 그 과정 하나하나에 있습니다. 함께 공부한 친구들, 프로젝트를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사랑했던 기억들, 가족과 떠난 여행 등 지나온 삶의 궤적 그 자체가 당신 삶의 의미입니다. 친구와 함께 간 교자 집에서 입안 가득 퍼지던 육즙,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면 꼬리 치며 반기는 당신의 반려견 또한 당신 삶의 일부분입니다.
시간을 내어 여행을 다녀오거나 치맥과 함께 방구석 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을 보는 건 어떨까요. 땅바닥에 배를 깔고 추리소설을 읽거나 흥미진진한 웹툰의 매력에 빠져도 좋고요. 온라인 게임으로 친구들과 메타버스의 세상을 경험해도 괜찮겠지요. 이 시간들이 쌓이면 삶의 의미도 조금씩 풍성해집니다.
니체 사상의 핵심은 영원회귀와 위버멘쉬(초인)입니다. 그는 우리 삶이 무한 반복된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고통스러운 이 삶이 무한 반복된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허무주의에 빠져야 할까요? 니체는 ‘다시 살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슬픔과 고통까지도 내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그가 말한 위버멘쉬입니다. 아모르파티(Amor fati)는 그래서 나온 말입니다. 니체의 영향을 받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의 신비를 사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을 몰라요”
관념과 정신에 갇혀 생각만 하다가 현재를 살 지 못하는 삶에 대한 질책입니다. 삶이 무한 반복된다면 당신은 하루도 허투루 살 수 없을 것입니다.
혹여라도 당신은 지금껏 ‘소소하고 작은’ 행복을 가볍게 여긴 건 아니었나요? 행복이란 뭔가 ‘대단하고 큰 것’이라서 ‘작고 사소한 것’에 기뻐하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요? 사소한 일도 놓치지 말고 그 순간을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보고 싶었던 영화의 개봉 소식. 작고 소박한 것에 마음껏 기뻐하고 행복해할 준비는 되셨나요? 갑작스러운 소나기로 하늘을 시커멓게 변하고 영화는 기대에 못 미쳤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그래도 내일은 다시 날씨가 좋아지고 다른 영화는 재미있을 수 있으니까요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당신 인생의 한 장면임을 잊지 마세요.
아모르파티! 삶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