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옳고, 남편도 옳습니다
결혼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녀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행위입니다. 서로의 희생과 양보 없이는 관계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누군가가 신뢰를 저버리거나 한쪽의 일반적인 희생만 강요할 경우 사랑의 맹세는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프러포즈를 받아들인 당신과 남편도 부부가 되었습니다. 신혼의 달콤함을 만끽한 후에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도 맺었습니다. 두 아이는 당신과 남편을 고루 닮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웠습니다. 아이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당신과 남편은 부부싸움을 했고 크고 작은 다툼을 이어가며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따졌습니다. 서로 자신이 옳다고 우기며 상대를 바꾸려 했고, 주도권 다툼을 벌였습니다. 지기 싫어서, 내 방식이 옳다고 생각해서, 한 번 물러서면 계속 끌려다닐 것 같아서 등의 구실을 내세워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습니다. 상대를 비추던 후광은 어느덧 사라지고 씁쓸한 현실만이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사건이 터졌습니다.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당신은 유학은 못 보내더라도 교육환경이 좋은 곳에서 양질의 교육을 시키고 싶었습니다. 제주도의 국제학교에 아이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남편과 상의를 하게 되었는데 당신은 뜻밖의 장벽에 부딪치게 됩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당신과 남편 둘 중 한 사람이 제주도로 내려가야 했기에 당신이 직장을 휴직하기로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주말부부도 하기 어려운 제주도에 굳이 아이들을 보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면서 완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서울에서도 충분한데 무엇 때문에 가족이 생이별을 감수하면서까지 제주도로 가야 하냐며 당신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생각이 조금 달랐습니다. 입시만을 목표로 아이들을 내모는 교육 현실이 마뜩지 않았고 당신과 남편의 경제력으로 외국까지 가지 않고도 양질의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활용해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주고 싶었습니다 생각이 달랐던 탓에 남편은 당신을 극성 엄마로 몰아세웠고 당신은 남편이 자기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비난했습니다. 서로 자기 말이 옳다고 주장하다 보니 상대방의 얘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거나 핑계에 불과하다고 여겼습니다. 의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갈등을 겪으면서 당신과 남편은 서로에게 날카로운 상처를 주고받았습니다. 도대체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일까요?
당신은 아이들이 양질의 교육 환경 속에서 글로벌 리더로 자랄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고 싶었습니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당신이 커리어까지 포기하면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남편은 가족이 따로 떨어져 살면서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게 해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자리 못지않게 아빠가 해야 할 몫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한 때 유행했던 기러기 아빠의 비참한 말로가 연일 매스컴에서 보도된 사실도 당신의 남편은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당신도, 남편도 의견이 달랐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사랑하는 가족이 잘 되길 바라고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마음의 다름 아니었습니다. 서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며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옳고 남편도 옳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남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요? 남편은 왜 당신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것일까요?
결혼 전에는 당신과 다른 배우자의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갖지 못한 부분, 나와 다른 것이 매력 포인트가 된 것이죠. 하지만 이제 당신은 그 ‘다름’ 때문에 이혼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성격차이’인 셈입니다. 성격차이라는 말은 비단 ‘성격’ 뿐만 아니라 생활습관, 가치관까지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즉 부부가 서로를 얼마나 다르게 느끼는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결혼 전에는 몰랐을까요? 물론 완벽하게 남편을 이해한 건 아니지만 당신은 남편이 당신과 무척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정도 차이는 사랑의 힘으로 가뿐하게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신혼의 단꿈에서 깨어나고 지난한 육아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서로의 눈에 들러붙어 있던 콩깍지는 벗겨졌습니다. 이제 서로의 ‘다름’ 은 고쳐야 하는 ‘문제점’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남편이 달라졌으면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남편에게 요구를 하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의도와 달리 남편은 ‘나만 문제가 있는 것 같아?’라며 받아치기 일쑤였고 잘잘못을 따지는 재판관처럼 서로를 비난하기 바빴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부부의 경우 그 대상은 배우자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의 인정을 받는 순간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요? 나의 결핍을 채워주는 배우자의 존재로 인해 당신의 존재는 더욱 빛이 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당신의 욕구는 좌절되고 좌절된 욕구는 서운함과 분노로 나타나게 됩니다.
요즘은 참고 살기보다는 쿨하게(?) 이혼을 선택하는 커플이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서로 안 맞으면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 생각하고 이혼이 옛날처럼 치명적인 약점이 되는 시대도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말이 오가는 순간 허물없던 사적 관계는 서류가 오가는 메마르고 공식적인 관계로 바뀌게 됩니다. 이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있습니다.
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주연의 <결혼 이야기>입니다. 제목이 왜 <이혼 이야기>가 아닌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결혼은 이혼까지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영화는 한 커플의 결혼생활이 이혼으로 막을 내리면서 둘의 세계는 끝이 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세계는 조금 더 넓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남편과 아내는 비로소 좁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한결 성숙해집니다.
열정에 휩싸여 사랑하는 대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당신의 이상형을 투사한 것이 연애기간이었다면 사랑의 호르몬도 사라지고 콩깍지도 벗겨진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출발점이 결혼입니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나 마침표가 아닌 것입니다.
당신이 남편과 다시 화해를 하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결혼을 지속하지 못할 상황에 이르든 간에 이 모두가 당신의 결혼 이야기입니다. 결혼 이야기를 통해 당신의 세계도 한층 더 넓고 깊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