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조용히 웃었다
자가격리 3일 차다. 코로나에 걸린 건 아니고 목 디스크로 갑작스레 한방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일체의 면회가 금지된 상황에서 홀로 2주일을 보내야 하는 것은 자가격리나 마찬가지인 셈이 되고 만 것이다.
병동의 하루는 병영생활과 비슷하다.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정확하게 배분된 시간에 맞춰 환자들은 시계추처럼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아침식사를 마치면 담당의사와 면담이 있고 곧바로 추나요법, 침 등의 시술이 시작된다. 침은 아팠고 말로만 듣던 추나요법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뼈를 맞추느라 요란한 건 물론 아니었고 덜커덩 거리는 기계소리가 때문이었다. 여기저기서 덜커덩, 철커덩,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하루가 시작되는 한방병원만의 조금 특이한 풍경이다.
오전 치료가 끝나면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일정이 다시 시작된다. 담당의사와 면담을 하고 오전에 받았던 침 치료를 한 차례 더 반복한다. 이후 한방 찜질로 몸을 데운 후 '충격파'라 불리는 이름도 무서운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 받아보니 이름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다음은 도수치료다. 도수치료는 다른 치료와 달리 꼬박 한 시간이 걸린다. 숙련된 치료사의 능숙한 손길로 근육은 이완되고 뻣뻣한 목과 어깨는 점차 부드러워진다. 마지막은 견인치료다. 견인은 무언가를 끌어낸다는 뜻인데 치료가 어떻게 진행될지 자못 궁금했다. 치료사의 지시에 따라 기구가 장착된 침대에 누웠더니 내 목이 저절로 위로 당겨졌다가 제 자리로 돌아왔다를 반복했다. 목을 견인한다는 뜻이었다.
치료를 받느라 이 방, 저 방, 아래층과 위층을 부지런히 오르내리다 보면 어느덧 저녁식사 시간이 다가온다. 병동의 환자에게 식사시간은 훈련소의 군인들 못지않게 간절하다. 일주일치 식단을 스크리닝 한 후에도 매 끼니마다 메뉴를 재차 확인한다. 다행히 식사는 나쁘지 않았다. 월, 수, 금, 아침은 선택식을 할 수도 있다.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는 듯한 음식은 약간은 심심한 맛이지만 그래서 덜 질리는지도 모르겠다. 서너 가지 반찬과 국이 주로 나오지만 짬뽕이나 닭곰탕 같은 특식도 나온다. 특식이 나오는 날이면 아침부터 설렌다. 어느새 나는 훈련소 군인처럼 단순해졌다.
나의 병원 순례기는 1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목과 어깨가 뻐근한 증상이 사라지지 않아서 동네 정형외과를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척추 전문병원, 대학병원, 한의원을 두루 거쳤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대를 갖고 방문했던 대학병원의 의사마저 속 시원한 처방 대신 ‘디스크에 문제가 있지만 수술할 정도는 아니니 꾸준히 관리하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라’는 공허한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양방과 한방을 함께 진행하는 병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사실 입원까지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작년에 이어 다시 촬영한 MRI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고 집중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판단이 없었다면 지루한 통원치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입원’이라는 두 단어가 의사의 입에서 흘러나왔을 때 나도 모르게 속으로 웃었다. 걱정과 우울한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부정적인 감정의 이면에는 기쁨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출근을 안 해도 된다' 출근면제가 가장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입원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득달같이 병가를 신청했다. 입원은 치료기간인 동시에 휴식의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을병은 아니니 쓸데없는 걱정은 내려놓으면 그만이고 이 참에 잠시나마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직장생활에서 합법적으로 놓여 날 수 있는 비상구를 마다할 순 없었다. 시험기간에 아픈 바람에 공식적으로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 철부지 중학생 마냥 나는 혼자 조용히 웃었다.
치료 틈틈이 미뤄두었던 책을 읽었고 어디를 가나 내 옆에 바짝 붙어 다니는 아이패드로 넷플릭스에 접속했다. 면회가 금지돼서 심심하지 않을까 했던 우려는 기우였다. 틈틈이 이렇게 글도 쓴다. 출근할 때 보다 더 바빠졌고 하루는 금방 지나갔다. 입원 첫날의 분주함과 이튿날의 불면기를 거쳐 나는 슬기로운 병원생활에 무사 안착했다. 매미가 허물을 벗듯 직장과 가정의 껍데기를 훌훌 벗어던졌다.
운동삼아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병동 건물 창 너머로 가을이 빠르게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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