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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센서

살다 보니 병원신세를 여러 번 지게 된다. 이번엔 디스크다.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정신없는 며칠을 보내고 병원에서 첫 날을 맞았다. 내가 입원한 병원에는 1인 실과 6인실 병상만 있고 내 자리는 6인실 병실의 제일 안쪽 침상으로 정해졌다. 안쪽이면 아무래도 오가는 사람의 방해를 덜 받을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운 좋게도 내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입원 첫날, 간호사의 안내를 받고 들어선 입원실의 풍경은 예전과 많이 달랐다. 병상마다 빈틈없이 쳐 놓은 커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물론이거니와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처럼 보였다. 새로 들어온 환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관심받는 것을 힘들어하는 성격임에도 낯선 풍경이었다. 보호자도 없고, 면회도 금지된 병실은 적막했다.


병원에서 지켜야 수칙과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일 등을 담당 간호사를 통해 전해 들은 후 치료실의 위치를 안내받고 주치의와 담당의사를 만났다. 바삐 오르내리며 하루 일정을 소화하고 나니 어느새 창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10시가 되자 누군가가 병실의 불을 껐고 어둠과 함께 정적이 내려앉았다. 너무 일러서 잠이 올 것 같지 않았지만 밖으로 나가서 청승 떨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의사가 목 디스크 환자는 누워있는 자세가 가장 좋다고 했던 말도 무시하기 어려워 잠을 청하기로 했다.


환경이 바뀐 탓인지, 좁고 딱딱한 침상이 불편해서인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최근 들어 이유 없이 불면에 시달리는 밤이 잦아지긴 했지만 행동반경이 좁은 병원에서 불면증이 찾아오면 난감할 수밖에 없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잡념을 애써 쫓으며 잠을 청했지만 내 의지와 달리 잠은 점 점 더 멀리 달아났다. 뒤척인 시간이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침대는 삐걱거렸고 뒤척임 때문에 다른 환자들이 깰까 봐 조심스러웠다.


새벽 두어 시쯤 겨우 잠이 드는 가 싶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에 희미해져 가던 의식은 다시금 명료해졌다. 반쯤 감겼던 눈은 커졌고 잔뜩 예민해진 촉수가 소리의 근원을 찾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침대 건너편의 환자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고 침상에 설치된 개인 커튼마저 철저히 가리는 병상 분위기 탓에 한 방에 있는 환자들 간에도 대화는 사라진 상태였다. 비슷한 키에, 비슷한 나이 또래인 경우 같은 방 환자인지 구분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건너편 침대다 보니 아무래도 자주 스치게 되어 나이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20대의 직장여성이었다.


코골이라고 하면 흔히 뱃살 두둑한 중년의 남성이 떠오르지만 젊은 여성이라고 코를 골지 말라는 법은 없을 터였다. 문제는 하필 그 여성이 내 침상 건너편에서 자고 있다는 것이었다. 잠이 깊게 든 상태였다면 그 정도 소리는 무시할 수 있었겠지만 내가 처한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천신만고 끝에 잠이 들려는 찰나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는 한껏 예민해진 신경을 자극했다. 고요한 병실에 규칙적으로 울리는 소음은 평소에는 무심한 신경의 소유자인 나의 감각 하나하나를 일깨웠다. 코 고는 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감지되지 않았다. 돋을새김처럼 소리만 도드라졌다.


평소 오감이 예민한 편이 아니다. 중학교 때부터 나빠지기 시작한 시력은 안경을 벗으면 부연 안갯속을 헤매는 듯하고 미각으로 말하자면 남편으로부터 ‘맛도 모른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미각이 둔한 편이니 후각도 예민하지 못할 것이다. 음식은 혀의 감각 이전에 후각으로 먼저 맛을 보는 과정을 거치니까 말이다.


이렇듯 평소 예민한 축에 속하지 못하는 내가 유독 민감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소리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일단 그 소음에 기가 질린다. 시끄러운 곳이 싫어서 카페 하나를 찾는 데도 발 품 파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철사로 칠판을 긁는 것처럼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에 나는 절망했다. 참다못해 결국 간호사실로 뛰어갔다. 사정을 설명했더니 간호사가 귀마개를 내밀었다. 이 것 외에는 대안이 없음을 그녀도 알고 나도 알았다. ‘오늘 밤은 참아 보겠지만 내일 또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방을 옮기겠다’고 잔뜩 부은 얼굴로 간호사에게 말했다. 큰 성과 없이 병실로 돌아와 귀마개로 귀를 틀어막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소리의 강도는 줄었지만 거친 호흡과 코 고는 소리는 여전했다. 다시 잠과의 힘겨운 사투가 시작되었다. 몸과 마음도 지쳐갈 무렵 갑작스럽게 소리가 멎었고 어느새 나도 잠이 들었다.


찌뿌듯한 얼굴로 일어나니 간밤의 일은 나 혼자만의 판타지였는지 다들 무심한 태도로 분주하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건너편 자리의 여자가 몹시 얄미웠지만 하루만 더 참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식사 후 나른한 몸을 누이고 책을 펼쳐 들었다. 여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듯하더니 기나긴 통화가 시작되었다. 회사일 때문인 듯했지만 대화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집중력은 흐트러졌고 책에 도돌이표라도 달린 듯 읽었던 곳을 읽고 또 읽었다. 진도가 나가지 않아 결국 책장을 덮고 말았다.


간밤의 사건(?)으로 미운털이 박힌 그녀는 다시 한번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여러 명이 쓰는 병실에서 잠깐의 통화야 괜찮겠지만 거의 30분을 넘기는 통화를 계속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아주 잠깐의 통화도 나는 반드시 밖으로 나가서 했기 때문이다. 통화도 소음이었기에 시끄러운 것이 질색인 나는 알아서 조치를 한 셈이었다.


긴 통화가 끝난 후에도 그녀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거나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바빴지만 결코 침상을 이탈하지 않았다. 코골이에다 염치까지 없는 그녀를 향한 내 분노는 커져만 갔다. 인내심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시험이라도 하듯 통화는 다시 이어졌다. 속이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나와 달리 다른 환자들은 무심해 보였다.


한 마디 해야겠다고 느낀 그 순간 마침내 그녀가 긴 통화를 마치고 침상에서 내려왔다. 굼뜬 동작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그녀는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들었던 통화내용에서 ‘보상’ 이란 단어가 여러 번 언급된 것으로 미루어 교통사고를 당한 것 같았다. 거동이 불편하니 어쩔 수 없이 침대 위에서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한창 일할 시간에 병원신세를 지고 있으니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에 무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목이 불편한 경우라서 거동에는 문제가 없다 보니 다리가 불편하거나 허리를 다쳐 걷기에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었다. 그녀는 절뚝거리며 힘겹게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몹시 부끄러웠다. 마음대로 짐작해서 각본을 쓰고 분노의 역할에 몰입했을 뿐 맥락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관객 없는 1인극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고 이후 나는 그녀의 전화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코 고는 소리도 적막한 병실의 배경음쯤으로 여기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시각이나 청각의 예민함이 아닐 것이다. 마음의 센서가 예민해야 한다. 타인의 마음에 내 마음을 포갤 줄 알고 그 사람의 입장에 서려고 노력하는 마음 말이다. 단단하게 그어놓은 선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채 멋대로 타인을 재단하고 비판한 나의 어리석음과 무딤을 그녀가 일깨워주었다.


본의 아니게 글감까지 제공해준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기로 했다.


단, 오늘 밤 코를 골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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