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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Jun 10. 2022

음악이 울리고 현란한 사이키 조명이 돌기 시작하면

저마다의 사연을 노래하며 천천히 늙어간다

우리 가족은 모두 노래를 잘한다. 나만 빼고 그렇다. 엄마는 젊었을 때 성악도를 꿈꾸었을 정도로 수준급 실력을 보유하고 있고 아버지는 엄마만큼의 실력자는 아니지만 노래를 무척 좋아하신다. 가요무대나 전국 노래자랑 같은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틈만 나면 흘러간 옛 노래를 흥얼거리신다. 동생들도 경연대회에 출전했던 이력이 있을 정도로 실력자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만 비켜간 유전자 덕분에 노래가 평생의 콤플렉스가 되고 말았다. 혼자 몰래 연습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엄마의 핀잔. “너는 누굴 닮아 소리가…쯧쯧” 말 줄임표 속에는 딸의 목소리에 대한 한탄과 비난이 무수히 숨어있음을 알기에 안 그래도 목구멍에서 겨우 올라오던 소리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맥없이 기어들어가고 말았다.  특히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일은 난제 중의 난제였다. 두렵고 긴장돼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에 압도당하고 자체 검열까지 받아야 했기에 한 번도 목청껏 부르지 못했다. 작고 떨리는 목소리, 벌겋게 달아 오른 얼굴, 어찌할 바 몰라 허둥대는 모습을 한심하게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나. 듣는 이까지 덩달아 불안하게 만드는 삼중의 연쇄 고리는 카오스 그 자체였다. 


이율배반적으로 들리지만 학창 시절 음악시간은 고역이자 즐거움이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한눈에 알아본 살리에르라는 음악가가 나온다. 재능은 모차르트에 못 미칠지언정 남의 재능을 알아보는 능력은 출중했던 불운한 천재는 평생을 질투 속에서 살아야 했다. 타고난 고음불가였지만 음치는 아니었고 박자나 리듬감은 정확한 편이어서 남이 놓친 박자나 음정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음악시간에 남모를 고충에 시달린 건 그래서였다. 실기시험을 위해 아이들이 하나 둘 지정곡을 부르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엇박자와 불협화음을 듣고 있노라면 웃음참기 대회에서 생존자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처럼 근육이 일그러지고 안색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노련한 선생님은 한 소절만 듣고도 ‘됐다, 그만!’이라고 짧고 단호하게 외쳤다. 고개를 숙이고 무대에서 퇴장하는 아이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음치, 박치들의 용감무쌍한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아주 미칠 지경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틀렸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신만만한 태도로 꿋꿋하게 끝까지 부른다.


대학생이 되니 강제로 노래 부를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놈의 장기자랑은 왜 그렇게 지치지도 않고 시키는지. 세상에서 장기자랑 시간이 제일 싫었다. 짧은 시간에 할 만한 게 대부분 노래였고 심각한 목소리 콤플렉스가 있었기에 그 시간이 지옥 같았다. 더구나 그때는 노래방 기계가 들어오기 전이었다. 생목을 따야 했고 기타 반주라도 있으면 감지덕지였다. 선배들의 강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면 시킨 사람은 금세 죄책감에 휩싸였다. 동기나 선후배들의 안쓰러운 눈빛은 갈 곳을 잃고 방황했다. 동정 어린 시선까지 한 몸에 받고 있으니 딱 죽고 싶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자동으로 반주를 해주는 기계가 들어왔고 동네마다 노래방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과 함께 나의 최애 템이 된 신문물이었다. 이 기계가 도입된 이후 식사가 끝나면 2차는 으레 노래방 행이 되었다. 회식 후 노래방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반 정도는 이미 술이 취한 상태고 나머지 반은 그럭저럭 멀쩡한 정신이지만 음악이 시작되고 현란한 조명이 돌기 시작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마이크를 잡고 열창을 시작한다. 애창곡이 있을 리 없는 나는 애꿎은 책자만 뒤적여보지만 부를만한 노래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한두 번 양보하다 보면 누가 불렀는지, 안 불렀는지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시간이 찾아오고 어깨동무를 하고 고래고래 떼창을 부르는 클라이맥스로 접어들게 된다. 휘황찬란한 사이키 불빛과 번쩍이는 미러볼, 지나치게 큰 반주 소리가 내 목소리를 가려 주었고 아슬아슬한 비키니를 입고 긴 생머리 휘날리며 해변을 달리는 언니들 덕분에 못 해서 도드라지는 내 노래도 그럭저럭 묻어갈 수 있었다. 이제는 반주 기계의 도움 없이 노래 부르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치 발가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듯한 수치심이 들 테니 말이다. 광란의 노래방에도 아마추어 가수가 한두 명쯤은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한밤의 시끄러운 고독을 달랬다.  


아버지는 노래방을 좋아했다. 핑계만 있으면 가자고 졸랐고 없던 핑계도 만들어서 식구들을 기어코 노래방으로 끌고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주 레퍼토리는 흘러간 옛 가요에만 머물러 있었다. 엄마는 마지못해 나섰고 우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아버지 뒤를 따랐다. 어두컴컴한 지하세계로 내려가면 축축한 꽃무늬 소파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이어 마른안주, 맥주가 플라스틱 쟁반에 담겨 나온다. 아버지의 레퍼토리가 시작되면 이미자, 하춘화, 나훈아, 남진이 차례로 소환된다. 지루한 가요 메들리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딸들의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차례로 돌아가던 마이크는 어느새 아버지의 손에서 더 이상 넘어오지 않는다. 단독 리사이틀이 된 것이다.  혼자만의 예술세계에 심취한 아버지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과하게 감정이입을 했다.  분위기는 급격하게 다운되고 끌려온 식구들은 아버지의 리사이틀이 끝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려야 했다.


아버지는 노래 부를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오래된 꿈과 타오르기도 전에 식어버린 열정, 흩어진 삶의 파편을 연료 삼아 저리도 애타게 부르는 것일까.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싶었던 마음을 한바탕 노래로 흘려보내고 싶었던 것일까.  


유례없는 팬데믹으로 노래방은 모두 문을 닫았고 밤 문화, 술 먹고 노래하는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 다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노래방도 성업을 이어갈 것이다. 음악이 울리고 미러볼이 돌고 현란한 사이키 조명이 춤추기 시작하면 일상의 짐을 잠시 내려놓은 사람들은 환상의 방으로 꾸역꾸역 모여들 것이다. 한두 시간의 일탈이 끝나면 비루한 현실이, 똑같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꽃무늬 소파에서 캔맥주를 따고 저마다의 사연을 노래하며 천천히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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