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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Feb 02. 2018

네 안에 나 있다

- 어린왕자는 직관형 -

<무소유>의 저자이기도 한 법정스님은 <어린 왕자>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어린 왕자>라는 책을 처음으로 내게 소개해 준 벗은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한평생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벗이다. 너를 대할 때마다 거듭거듭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벗은 나에게 하나의 운명 같은 것을 만나게 해 주었다. 지금까지 읽은 책도 적지 않지만, 너에게서처럼 커다란 감동을 받은 책은 많지 않았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나한테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의 경전이라고 한대도 조금도 과장이 아닐 것 같다. 누가 나더러 지묵으로 된 한두 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화엄경>과 함께 선뜻 너를 고르겠다 “



]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나를 길들여줘.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별처럼 반짝이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 한 <어린 왕자>는 우리나라에서만 수백 종의 판본이 나왔을 정도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책 속에서 만난 여러 등장인물 중에서 유독 거울처럼 나를 비추는, 나와 비슷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누군가를 만날 때가 있다.  


등장인물을 통해 자신의 성격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네 안에 나 있다’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성격은 개인의 독특한 심리 체계로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주는 척도이다. 그 사람의 고유한 특성으로, 개성과 자아의 뿌리가 된다. 타고난 성격에 따라 습관과 생활태도가 달라지고 제각기 다른 삶의 설계도를 그리게 되기 때문에 성격을 발견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해가 바뀌고 나이가 들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어린 왕자>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이야기에 담긴 ‘의미’에 끌리기 때문인 것 같다. 동화처럼 짧은 이야기지만  <어린 왕자> 속에는 인생에 대한 수많은 은유와 통찰이 담겨있다. 어린 왕자의 행동이나 추구하는 이상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껴져서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나처럼 ‘직관형’ 일 가능성이 높다.


융의 심리 이론에 근거한 MBTI 성격유형 이론에 따르면 직관형은 통찰을 통해 의미와 가능성, 관계를 인식하기를 즐기는 성격이다. 예를 들어 사과를 바라 볼 때' 직관형'과 대비되는 '현실형'의 사람은 “저 사과는 달콤하겠다, 색깔이 참 붉다”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직관형의 사람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창세기에 나오는 '선악과'를 떠올린다. 또 어린 시절 벽장 속 몰래 감 둬두었던 사과를 꺼내 주시던 할머니의 따뜻한 정을 기억해내기도 한다.


직관형은 말을 할 때에 비유적이고 창의적인 언어를 즐겨 쓴다. 종종 현실에서 벗어난 상상의 세계에 빠지다 보니 눈앞에 보이는 사물이나 사건의 구체적인 모습을 잘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다.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는 의미 중심, 핵심 위주로 책을 읽다 보니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사항을 무시하거나 빠트리는 실수를 하는 단점도 있다.  만약 직장 상사가 현실형이라면 상세하게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하는 게 낫지만 직관형의 상사라면 길게 설명할 경우 “핵심만 간단히 하세요!”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던 ‘나’는 비행기 사고로 혼자 사막에 불시착해 어린 왕자를 만난다. 어린 왕자는 자신이 살던 별과 지구로 오기 전 여러 별을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품 속에서 생 떽쥐베리는 여우의 말을 빌어 독자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사랑했던 장미가 평범한 장미에 불과했던 사실에 실망한 어린 왕자에게 여우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넌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음을 잊어선 안 돼”라는 말로 관계에 대해,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일러 준다.


오랜 시간 연인과 함께하다 보면 특별함은 평범함으로, 신선함은 익숙함으로 빛이 바래지곤 한다. 긴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자주 잊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우의 말은 긴 여운을 남긴다. 또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줘서 그동안 외면했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다. 어린 왕자가 지구로 오기 전 여러 별에서 만났던, 끝없이 남에게 군림하기를 원하는 왕, 자기를 칭찬해주기만을 바라는 허영꾼, 허무주의에 빠진 술꾼, 돈을 최고로 여기는 상인, 기계문명 속에서 인간성을 상실한 점등인, 이론만 앞세우고 행동하지 않는 학자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2차 대전에 참전하기도 했던 생 떽쥐베리는 전쟁 속에서 짓밟히고 죽어나가는 숱한 생명을 보면서 작고 연약한 장미 한 송이를 사랑하는 어린 왕자를 통해 순수한 인간성 회복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체구는 작지만 칼을 차고 기사의 망토를 두른 어린 왕자는 진정한 행동가이자 꿈을 잃지 않은 시인임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어린 왕자>의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순수를 만날 수 있다. 책을 덮고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린 왕자는 소행성 B612에서 자신이 길들인 장미와 여전히 티격태격하면서 살고 있을까?’

엉뚱한 상상을 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직관형이다.


<어린 왕자>를 사랑하는 법정스님의 성격유형도 아마 직관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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