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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Oct 15. 2018

렌즈 속에 담긴 세상

몇 해 전 저무는 해를 보내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안면도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도 어쩐 일인지 한 번도 가지 못한 곳이라 시간을 내서 섬을 다녀오기로 했다. 세 시간 여를 달려 도착했다. 수목원과 꽃지 해수욕장, 수산시장 등을 돌면서 안면도의 겨울을 몸과 마음에 새겨 넣었다. 그러는 동안 일상의 자잘한 스트레스는 내 안에서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분해되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1년간의 힘들고 고달팠던 시간들을 털어내고 각자의 힐링을 하느라 바빴다. 저녁에는 삼겹살과 조개구이로 바베큐 파티를 했다. 여행지에서 먹는 음식은 별다른 양념 없이도 ‘자연’이라는 맛깔스러운 양념이 더해져서인지 그 맛이 일품이다. 눈과 입을 호강한 2박 3일의 일정이 끝나고 여행의 마지막 날, 안면도를 떠나는 아쉬움을 달래고자 우리 가족은 다시 해변을 찾았다. 이른 아침의 바다는 저녁에 보았던 풍광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평화로운 겨울 바다에서 우리 가족은 사진을 찍고 조개를 주으며 마지막 추억의 조각들을 모았다. 


한결 넉넉해진 마음으로 해변을 둘러보던 내 시야에 갯벌에서 작업 중인 아낙의 모습이 들어왔다. 햇볕을 가리고 바람을 막아주는 챙이 넓은 모자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허벅지까지 오는 긴 고무장화를 신은 전형적인 어촌 아낙네였다. 썰물 동안 부지런히 조개를 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 한 겨울 추운 갯벌에 한 점 섬처럼 떠 있었다. 우리 가족이 낭만적인 겨울여행을 하는 서해의 바닷가는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엄숙한 노동의 현장에서 홀로 작업에 열중한 아낙의 모습은 아름답고 경건했다. 영화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와 소가 그랬듯이 ‘인생’이라는 굴레바퀴 속에서 아낙은 익숙한 삶의 방식 그대로 살아왔다, 사라질 것이다. 갯벌의 아낙은 자식들을 위해 죽을 때까지 피땀 흘리는 마지막 세대, 앞으로 다시 볼 수 없는 한 세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아낙네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카메라에 담으려다 그만두었다. 한 사람의 삶의 질곡과 풍성한 경험을 작은 렌즈 속에 가두는 일이 내키지 않았다. 사진은 피사체를 아름답게 담아내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시간성을 담아내는 행위이자 타인의 삶의 일부분을 렌즈 속으로 옮겨오는 일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담아내기에 내 경험의 한계치는 너무 좁았다. 아낙의 삶이 좁은 렌즈 속에서 왜곡될까 두려웠다. 

관찰은 삶을 보다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 관찰은 ‘자세히 본다’는 의미이고 자세히 보려면 관심이 필요하다. 그 대상이 사물이든 인간이든,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한다. 다양한 각도의 상상력도 필요하다. 진지한 관찰을 통해 주변의 많은 것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 서해안의 갯벌에서 노동의 수고로움과 생의 의미를 되새김질하며 한동안 서 있었다.


여행이란 일상에 묶여있던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다. 일방통행이었던 그동안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낯선 타인의 삶으로 건너가는 시간이다. 질펀하고 너른 갯벌에 한 점 섬으로 떠 있던 아낙의 모습이 여행지에서 돌아온 후에도 가슴속을 이리저리 떠 다녔다. 올 겨울에도 안면도에 다녀올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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