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한 끼를 해치워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먹는 음식은 식사가 아니라 사료에 가깝습니다”라고 했다. 밥그릇에 머리를 박고 허겁지겁 숟가락질을 하는 내 모습이 겹쳐졌다. 가슴이 뜨끔했다. 개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닌데, 그동안 식사를 한 게 아니라 사료를 먹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학창시절 반에서 제일 늦게까지 도시락을 먹고 있는 아이는 나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오후 수업 종이 울렸을 정도로 천천히 꼭꼭 씹어서 오래오래 밥을 먹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세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 생활과 글 쓰는 일까지 병행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늘 시간에 쫓겼고 24시간은 언제나 부족했다. 서서 밥을 먹는 날도 다반사였고 달콤한 잠에게 아침 시간을 양보한 날이면 그마저도 먹지 못한 채 허둥지둥 출근해야 했다. 부지런한 새처럼 일찍 일어났고 올빼미처럼 늦은 밤까지 깨어있었다. 집과 직장을 시계 추처럼 오가며 엄마, 아내, 직장인으로 주어진 몫을 다하느라 치열하게 달려왔다.가족과 일을 우선순위에 두다 보니 ‘정작 나한테는 소홀했구나’ 하는 생각에, 한 끼 밥조차 여유롭게 먹지 못할 정도로 ‘나를 돌보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에 서글픔이 밀려왔다. 삶의 속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모든 속도가 슬프다“
-김주대/도둑 고양이3-
시인은 사람을 피해 도망 다니는 도둑고양이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술 마시고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와 아버지를 피해 도망가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순간, 깊은 슬픔이 밀려왔고 무의식 저편에 가라앉아 있던 고통이 예리한 면도날처럼 의식을 찔러왔을 것이다. 고통을 한 편의 시로 풀어낸 후에라야 오래된 아픔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속도의 본질은 ‘슬픔’과 ‘두려움’이다. 바쁘게 살지 않으면 뒤처질까 두렵고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어렵게 마련한 작은 보금자리마저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이 우리를 치열한 ‘속도’전으로 내몰고 있다. 올라갈 때 예쁘게 핀 꽃을 보지 못하는 삶, 목적지만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삶은 그래서 슬프다.
물리학자 ‘미츠오 카쿠’는 ‘모든 것은 녹슬거나 부패하거나 노화되거나 분해되어 결국 사라진다’라고 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나이가 들고, 늙고 병들어 결국은 죽는다. 삶은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고 예정된 죽음을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의 공통된 숙명이다.
생로병사에 저항하기 위해 성형을 하고 선행학습을 하고 조기유학을 보내는 이 모든 것은 엔트로피에 대한 도전이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싸움의 승자는 결국 ‘인간’이 아닌 ‘시간’이다. 삶의 종착역은 결국 ‘죽음’이기 때문이다. 승산 없는 싸움에 몸과 마음이 지쳐 버리면 번 아웃, 즉 ‘소진’이라는 병이 찾아온다.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대표적인 질병이다.
출근길 고속도로에서는 주변의 경치를 바라볼 여유가 없다. 가야할 곳과 도착해야 할 시간이 발목을 잡아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의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국도는 조금 다르다. 천천히 달리면서 주변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싱그러운 초록을 온몸으로 느끼고 덜덜 거리는 경운기의 소음조차도 국도가 주는 낭만으로 여기며 여유롭게 달릴 수 있다.
퇴근길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노란색으로 바뀐다. 신호등이 내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잠시만 멈추고 기다려 달라고... 적색 경고등이 불안하게 깜박이던 내 삶에도 이제 노란 신호등을 켜야 할 때다. 삶이란 여정에서 때로 브레이크가 필요함을, 삶의 속도를 조절해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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