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무당이 낫겠어

일기 아님

by 쏘녕

엄마-언니-나 세 모녀는 종교에 매여있다. 사실 엄마에서 나까지 내려오면서 그러데이션으로 흐려진다고 봐야 한다. 엄마는 하느님 체험, 성령 체험을 직접 한 사람이다. 언니는 엄마의 보조자로 하느님말씀을 들으며 같이 기도하는 사람이고 나는 지켜보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 능력도 없고 둘이 하는 말에 휘둘린다는 것이다.


엄마의 예언 비스무리 한 것은 다 맞는다. 그런데 언니의 색안경이 끼면 다 틀린다. 특히 내 문제는. 엄마와 언니가 세트처럼 묶여 얘기하고 말씀을 받기 때문에 언니가 안 섞일 수가 없다는 것도 답답한 점이다. 이 가정 안에 있을 때는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게 옳은 방향이지만 내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저 말을 믿었다가 낭패를 보면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남들이 보기엔 그냥 무당 말 들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나도 차라리 무당 말이라면 그냥 흘려듣고 선택도 현실성을 고려하여 내 마음 가는 대로 했을 것이다. 근데 착한 아이이자 모태신앙인 나는 여길 벗어나지 못했다. 30대가 되어서야 나는 싫다는 의사표현을 하게 되고 나한테 말을 전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나에게는 무당말을 듣는 것과 같다, 차라리 무당말을 듣는 게 낫겠다"

라고 표현했다.


언니는 그런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삐지는 편이지만 이번엔 엄마만 있어서 할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한 것 같다. 무당이 왜 맨날 기도드리고 수양해야 하는지 알겠다. 언니의 욕망이 한 꺼풀 감싸면 모든 일을 그르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게 이런 거겠지. 볼 수 있는 사람은 겸손하고 말도 조심해야 한다.


나는 이제 풀려나는 것 같다. 주말마다 성당에 나가느라 시험 공부 할 때조차 피곤함을 무릅쓰고 미사에 참석하는 것들이 마음의 위안이 되지 않은지 오래되었고 냉담도 오래되었다. 시간과 체력과 돈을 얼마나 아낄 수 있던 건데 어리고 젊은 시절을 거기에 썼나 싶다. 좋았던 건 학원을 다니지 않는 나에게 또 다른 학교 역할을 해서 학교 스트레스를 벗어났던 것이고 거기까지가 성당의 역할이었던 것 같다. 그것도 사실 초등학교, 많이 쳐줘봐야 중학교 때까지이다.


나는 이제 어디에 헌금을 해라 정도만 말을 듣고 산다. 기부하고 희생하고 하는 건 미리 살풀이를 하는 셈 치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택에 끼어들지 않게 할 것이다. 내가 힘 빠지기 전에, 전력으로 내 삶을 만들 수 있을 때 나를 위해 힘을 쓰고 싶다. 더 이상 '하느님 말씀'이란 거에 선택이 좌지우지되고 싶지 않다.


이래서 삼대 거지 없고 삼대 부자 없다는 거구나. 선대의 영광을 체감하지 못하고 단점을 겪은 후대는 반대급부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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