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위한 작업은 검색에서부터 시작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적는 것부터 시작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뿌리와 줄기, 잔가지를 그리지 않았다면 무엇도 쓸 수가 없다. 글을 쓰면서도 끊임없이 검색창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영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말 '미치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딱히 쓸 이유를 못 찾는다는 것은 입에서만 맴도는 아주 원론적인 도입부 때문이다. 하나도 끌리지 않는 주제를 끌리지 않냐며 읽기를 강요하는 기분, 글을 풀어야 하는 의무감 때문에 머리뿐 아니라 가슴까지 생각을 짜낸다. 차라리 이 현실을 도피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 엄한 영상으로 눈을 돌린다. 보고 있으면 멍청해지는 느낌이 드는 그저 그런 영상들 말이다. 그러다 보면 원고를 써야 하는 몇 시간이 훌쩍 사라진다. 그렇다고 써야 할 원고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지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는 걸 어쩌란 말이냐.
글이 못 쓰는 건지 안 쓰는 건지 잘 모를 때가 있다. 그런데 두 가지 경우 모두 원인은 하나다. 나를 설득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나와 끊임없이 대화한다. 두 개의 자아가 써야 하는 이유와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적절하지 않은 이유)를 번갈아 가며 주장한다. 둘 중 하나가 받아들이기 전까지 계속되는 두 자아의 머릿속 토론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매우 치열하다. 힘 있는 자아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더 논리적인 자아가 이기기 때문에 금방 지쳐버린다. 글을 타이핑하는 시기보다 구성을 위해 두 자아가 싸우는 시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두뇌 활동은 평소에 비해 배로 증가하고 당은 두 배 빠르게 소비된다. 그런데 묘하게 마감 하루 전날에는 그 논리의 실마리가 풀리는 경우가 많다. 밤새 원고를 마무리하고 다시 읽어보면 처음의 논리가 그대로 반영된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처음 생각을 말한 자아가 이긴 것이다. 선빵이 중요하다. 더 많은 지식을 습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뭣 모르고 세웠던 가장 직관적인 논리 구조가 결국 답이 된 셈이다. 이유는 원고를 읽는 독자들도 주제를 처음 접한 나와 같은 상태라는 것에 있다. 사람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읽고 싶어 한다. 그들이 하는 생각의 구조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정답인 것이다. 하지만 더 좋은 구조가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나는 정보 습득에 더 열을 올리는 편이다. 관련 정보와 지식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도중에 필요한 도구일 뿐, 글의 구조를 짜는 데는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걸 매번 느끼면서도 새로운 주제의 원고를 청탁받으면 그렇게 검색을 해댄다. 물론 검색을 통해 더 좋은 스토리텔링을 떠올리기도 한다. 타이틀을 정하는 데에도 상당한 센스를 발휘한다. 그렇지만 글을 빠르게 써야 하는 청탁 작가(프리랜스 작가)에게는 독 아닌 독이 된다. 글을 느리게 완성되고 그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그 소중한 시간(글을 써야 하는 시간)을 다른 것(이 글을 쓰는 시간)으로 소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조차 나중에는 글에 반영이 된다는 것이 좀 신기하다. 어쩌면 글은 논리 구조에 따라 쓰는 게 아니라 아무 말로 시작해 주제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정말 쓰기 힘든 또는 싫은 글을 시작할 때 많이 하는 방법은 아무 단어로 시작해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단어에서 파생된 생각들이 점차 제자리(주제)를 찾아가게 된다. 어이없는 글의 시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다른 관점으로 주제에 접근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참신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어차피 중간은 거의 다 비슷하다. 결국 검색을 통해 찾고 싶었던 것은 남들과 다른 신선한 시작과 결말이다. 딴짓과 낙서는 글의 시작에 있어서 필수 요소인 것이다. 신선한 관점을 필요하다면 주제를 관통하지 말고 겉돌아보자. 빙빙 많이 돌아갈수록 더 신선해진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