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고르는 동안
즐거웠다

선물의 기쁨과 슬픔

by minmin




결국 선물을 고르긴 했는데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다. 선물이란 게 원래 내 것이 아닌 것이 내 인생에 끼어든 것이기에 내 취향이나 워너비가 아닐 확률이 높다. 선택이 주는 새로운 시도나 느낌을 끊임없이 떠올려야 한다. 어딜 봐도 나와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물건을 받고 즐거워하는 상대방의 모습이나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습을 걱정스럽게 상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간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그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꼭 필요한 걸 물어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원래 선물이 갖는 의미가 퇴색될 것이기에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쩔 수 없이 선물을 위해 우리는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 사람은 모르는 나만의 시간, 상대방을 배려하며 그 사람의 취향을 떠올리는 시간 말이다. 그러니 받는 사람의 '고마워'란 말엔 선물이 주는 물질적 고마움뿐 아니라 '나를 생각하며 (선물을 고르기 위해) 너의 소중한 시간을 나에게 써줘서 고마워'라는 의미도 꼭 담겨야 한다. 물건만 보내는 게 아니라 나의 시간도 같이 보냈음을 받는 입장에서는 꼭 알아주어야 한단 말이다.



그런데 고르는 동안 행복했을까. 이상하게도 고르는 동안 원고 마감을 10분 앞에 둔 것처럼 초조했다. 빨리 골라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졌다. 사실 선물을 고르기 위해 며칠째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무엇이 좋을까 생각했다. 무엇을 받으면 기뻐할까, 잘 사용할 수 있을까 떠올리려 노력했다. 그러다가 뜬금없는 아이템이 선택되었다. 가격이 좀 있어서 평소에는 눈팅만 하던 것, 프라이탁이다. 내 입장에서 프라이탁은 친환경적이긴 하지만 실용적이지 못한 가방이다. 냄새가 심하고 무거워서 물건을 많이 담지 못한다. 늘어나지 않으니 욱여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선물로 프라이탁을 고른 이유는 순전히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선물은 나에게 두 가지 기쁨을 가져다준다. 첫 번째는 받자마자 느껴지는 표정의 변화. 두 번째는 자주 사용하는 모습을 보는 만족감. 이번 선물은 두 가지 중 첫 번째에 더 치중했다. 이유는 그동안의 '내 선물'의 성향과 관련 깊다. 그동안 내 선택을 받은 선물은 아무리 생각해도 순간의 만족이나 기쁨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았다.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선물은 받는 사람의 취향으로만 결정되는 건 아니다. 선물엔 어쩔 수 없이 주는 사람의 취향이 묻어난다. 얼마 전 친구에게 선물을 보냈는데 이렇게 메시지가 왔다. '선물에서 네가 보인다' 사실 그에게 준 것은 나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내가 받았으면 하는 것들이 가장 편한 친구에게 전달된 것이다. 선물을 대충 골라서 그런 소릴 듣게 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코 대충은 아니었다. 나름 정해진 시간과 가격 내에서 가장 최고의 선물을 골라 보냈다. '아무 거나 괜찮아. 주는 게 어디야'로 처리되는 선물 리스트는 무궁무진하다. 그중에서 무엇을 고르는가는 나와 너의 공통된 취향에 있다. 컵을, 인형을, 필통을, 모자를, … 뭐든 줄 수는 있지만, 거기에 캐릭터가, 캘리그래피가, 브랜드 네임이, … 또, 거기에 일반적인 것, 둥근 것, 찌그러진 것, 물이 빠진 것, 큰 것, 작은 것 등 깊어지는 뎁스에 어느 하나는 배려를 가장한 나의 취향을 담게 된다. 예를 들어 머그컵을 골랐다면, 클래식을 좋아하는 너를 위해 가장 기본적인 스타일을, 모던하고 깔끔한 느낌을 선호하는 너를 위해 아무것도 인쇄되어 있지 않은 디자인을, 커피를 즐겨 먹는 너를 위해 조금은 큰 사이즈를, 오래 두고 먹는 너를 위해 뚜껑이 있는 것을 선택했다고 치자. 최종적으로 결정된 선물이 혹시 내게도 필요한 물건 또는 내 취향의 물건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제목에 있는 선물의 슬픔은 어디에 있냐면,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내 취향이 든 그 선물을 나는 받을 수도, 사용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똑같은 것을 두 개 사서 너 하나, 나 하나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 선물은 내가 받고 싶은 것이었지만 내가 쓸 수 없는 것이 슬픔이고, 그런 취향을 선물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 또한 슬픔인 것이다. 내가 나에게 선물하는 것과는 다르다. 다른 누군가가 나를 너무 잘 알아서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고른 듯한 취향의 선물을 해준다면, 그 사람은 꼭 잡아야 할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은 두 번 다시 세상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있다 해도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지역에 살며 비슷한 성장 배경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은 무척 희박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선물을 위해 상대방을 생각하는 그 시간만은 나에게 즐거움이고, 내가 고른 듯한 선물을 남에게서 받고 싶다는 욕망은 비극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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