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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씨 Mar 07. 2021

꿈같은 크레타 한달 살기 여행

코로나 이후에도 ‘살기’ 여행은계속 이어질것이다

여행의 본질이 라이프로 옮겨지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MZ 세대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비상하고, 특별할 것을 강요받는다. 

SNS 에는 늘 어디에 새로운 카페가 생겼는지, 

어떤 브랜드가 잘 나가는지, 누가 어떤 정보를 공유했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진다. 


긴 연휴에 별 계획 없이 집에서 쉬고 싶지만, 
남들에게 평범한 사람으로 보일까 망설여진다. 


평범함의 뜻은 모호함, 취향 없는 정체성으로 폄하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Fear Of Missing Out이란 ‘포모 증후군’이라 부른다. 

잠시라도 새로운 것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하지만 이제는 FOMO에서 JOMO ‘Joy Of Missing Out’도 하나의 삶의 기준이 된다.

의지적으로 탈 SNS를 하거나, 각종 불필요한 소셜 모임을 줄인다. 

대신 평범함 속에서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다. 


여행에서도 SNS 인증용 멋진 액티비티보다는, 

자신이 생각해왔던 삶의 가치와 본질에 집중한 살기 여행의 가치가 높아지는 추세다. 

여행지 역시 휘황찬란한 랜드마크가 있는 곳보다는, 

일상 속 매력적인 가치를 찾아내고 알리는 라이프 인덱스를 세울 수 있는 도시가 뜨고 있다. 


모름지기 그 지역의 정체성 즉 본질은 랜드마크라는 인공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의 삶 속에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멀리서 북소리가 들린다면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478562

나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하루키의 유럽 여행 에세이, <먼 북소리>의 한 구절이다.


하루키 소설의 특징은 볼 때는 재미있는데,
다 보고 나면 묘하게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


막상 누구에게 얘기해 주려면 그 줄거리가 도통 요약이 되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그의 에세이가 훨씬 영양가 있다.

특히, 그가 40세를 앞두고 홀연 떠난 유럽에서 3년간 거주하면서 쓴 여행 에세이 <먼 북소리>는 매력적이다.

그가 30세 되던 해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등단했고, 

3년 후 <양을 쫓는 모험>으로 본격 유명세를 탄 후,

37세가 되던 86년에 홀연 유럽으로 떠나서

3년간 그리스, 이태리, 영국에서 살면서 이 글을 썼으니

본격적으로 작가로 활동한 지 7년쯤 될 무렵이고,

회사로 치면 대리에서 과장으로 넘어가는 그 고비에 쓴 셈이다.


초반의 열정은 소진되고 새로운 재충전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리고 나이로도 곧 마흔 살이 되는, 인생의 고비 같은 시점이기도 했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이 책의 앞부분에 잠깐 언급을 한다.


마흔 살이라는 나이는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인생의 고비가 아닐까 하고,

나는 오래전부터 줄곧 생각해 왔다.

특별히 뭔가 실제로 근거가 있어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다.

<먼 북소리, p.14>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유난히 부담스러운 나이가 있다.

과연 이 날이 올까 하면서 조마조마 무서워하던 뭔가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라고나 할까.

30세일 수도 있고, 35세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40세에 그런 위기를 겪는다.

그럴 때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루키처럼 외국에 가서 3년 정도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해도 좋은 직업을 가졌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니.

장기 휴가를 내거나 아니면 직장을 옮기면서 그 막간을 이용해

장기 여행을 단 한 달이라도 떠나 보는 용기를 꿈꿔 보는 것도 좋다.

특히, 하루키가 철 지난 그리스의 섬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누구나 한 번은 꿈꿔보는 이상향과 비슷하다.


자연이 아름다운 곳, 인간이 아름다운 곳. 한가로운 고양이를 보며 행복을 느끼는 곳. 


자 여기서, 한 달 살기를 위한 체크리스트


□ 일단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갈 것.

□ 가장 중요한 것, 사람 밀도가 높지 않은 곳, 그러나 오지는 싫다. 

□ 약간 도회지. 그러나 목가적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면 좋음.

□ 문화와 교양을 가진 이웃들, 그러나 너무 자본주의적이지는 않았으면 좋을 듯.

□ 바다가 좋으면서 아름다운 산과 계곡도 있으면 좋은 곳.

□ 무엇보다 날씨는 온화하고 따뜻한 햇볕이 계속 있는 곳.

□ 지루하지 않게 돌아볼 한적한 역사 유적지가 있는 곳. 

□ 내가 좋아하는 어느 작가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으면 더 좋겠다. 

□ 음식은 화려하지 않아도 담백하고 건강한 식재료가 풍부하면 좋겠어. 

□ 숙소는 바다 전망이 보이면서 깔끔하고 조용한 곳

□ 위의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면서 그러나 물가는 싼 곳.


이렇게 완벽한 곳이 세상에 어디 있냐고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있다, 바로 그리스 크레타 섬이다.


크레타 섬, 이라클리오에서 한 달 살기


https://www.google.co.kr/maps/place/Crete,+Greece/@35.2275842,22.6685495,7z/data=!3m1!4b1!4m5!3m4!1s0x149afe2f827d98a1:0x100bd2ce2b9c630!8m2!3d35.240117!4d24.8092691


크레타는 제주도의 4배 크기. 작지 않다.

한 달을 살아도 욕심 내서 돌아다니지 않으면 다 돌아보기도 어려운 곳이다.

마치 제주도처럼 중앙부가 상당히 높은 산으로 이루어진 섬이라

도시나 큰 마을은 대부분 해변가의 좁은 평지에 위치해 있고,

맑은 바다와 아름다운 일몰로 유명하다.

또한 산에는 이곳저곳 협곡이 발달해, 하이킹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날씨는? 대표적인 지중해성 기후다.

지중해성 기후라면, 일 년 내내 고온 건조해서 올리브, 오렌지가 잘 익는 그런 날씨. 사철 햇볕이 좋고, 습하지 않아 까슬까슬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크레타의 해변은 아름답다.

에게해와 리비아 해에 걸쳐 펼쳐진 수많은 해변 중 대표 격은

서부의 엘라포시니(Elafonisi)와 남서부 레티노 현의 프리 벨리(Preveli)다.

특히, 엘라 포니시는 핑크 비치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하다.


산호가 섞인 모래가 가득해서 해변이 분홍빛으로 보이기 때문.

서핑도 즐길 수 있다.

서핑 세 시간에 50유로 수준. 한국에서 배우는 것보다 싸고 길게 탈 수 있다. 


사람들은 여유롭고 친절하다.

물가가 싸기 때문에 레스토랑은 즐겁게 찾아다닐 수 있고,

더욱이나 후식을 공짜로 주거나 빵을 공짜로 주는 곳이 태반.

유럽스럽지 않은 후덕한 인심.

일상 태평인 표정에 친절한 사람들.


음식이 담백하고 짜지 않다.

재료도 한국과 비슷하다. 


숙소 가격도 비싸지 않고, 적당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어 한적하다.

지중해의 밝은 빛이 아침을 깨워준다.

주인은 친절하고 협조적이다. 간단한 영어로 나가서 이곳저곳 가보라고 듣기 싫지 않은 잔소리를 한다.


아침 식사는 간단하지만 맛있다.

점심에 나갔다가 저녁이면 일찍 들어온다.

내 방 창문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석양 노을을 바라보며 현지 맥주 시원하게 한 잔.

바깥에서 방황할 필요도 없고, 내일 아침 출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오늘은 해변으로. 내일은 협곡 하이킹으로. 모레는 근처 산토리니 섬이나 가볼까?

주말에는 콕 박혀서 뒹굴뒹굴 쉬어야지. 


역사와 문학도 되돌아볼 수 있는 곳


‘크레타’라는 이름이 왠지 익숙하다면,

그 이유는 바로 교과서에서 배웠던 ‘크레타 문명’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자그마치 기원전 2,000년경으로 추정되어 유럽 문명의 근간으로 여겨지는, 문명 계의 시조새.


섬의 주도인 이라클리오(Iraklio)에서 약 5km 떨어진 곳에 크노소스 궁전(Knossos palace)이 있다.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전설 혹은 신화로만 여겨지다가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반이 궁전터를 발굴하면서 실제 존재했던 문명이었음이 증명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크레타 하면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소설인 <그리스인 조르바>는

늘 빈틈없이 미래를 설계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소위 현대 지식인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냥 지금, 여기 있는 것을 기뻐하고 즐기면 되지 않냐고. 

그것이 인간의 진정하 자유 아니냐고. 


카잔차키스는 크레타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오에서 태어났다.

조국의 수난과 박해, 독립을 향한 투쟁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탓일까.

카잔차키스는 작품 속에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갈망 그리고 고향에 대한 애정을 끊임없이 투영시켰다.

묘비에는 잘 알려진 대로 ‘나는 아무것

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라고 쓰여 있다.

한 달 살이를 하는 내내 곱씹어 볼수록 울림이 있는 말이다. 


그렇게 한 달. 

마치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특별한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무슨 대단한 체험을 한 것도 아니고, 세상에 없는 절경을 구경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비용 대비 아웃풋이 없다고 불평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라는 깨달음이
또 하나의 인생의 인덱스를 만들어 줄 수 있다.


바로 그 깨달음이 중요한 것 같다.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라는 깨달음.

살기 여행의 추억은, 지금 여기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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