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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씨 Jul 10. 2021

50세 박사 도전기

관광마케팅 박사과정 지원하다

관광마케팅 박사과정 도전!

꼭 2년 전 시작한 관광마케팅 석사 과정이, 이번 8월에 드디어 끝난다.

그리고 무려 “박사과정”에 진학을 결심했다.


젊을 때는 대학원 진학이 싫었다.

해외로 유학 갈 형편이 못 되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대학원 진학을 하자니,

초라한 학교 건물과 화장실, 그리고 여전히 빈곤할 학교 앞 자취방이 싫었다.

회사에 들어가면 시내 한가운데 멀쩡한 사무실에 내 자리와 전화기가 생기고,

겨울에 춥지 않은 깔끔한 화장실에, 무엇보다 월급이, 월급이.

그 돈으로, 같은 학교 앞이더라도 좀 더 좋은 방으로 옮길 수가 있었다.


그런데 회사 생활 20년이 지나갈 어느 무렵.

문득 학사인 채로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나이에 주책맞게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는 때가 있다”라는 옛말이 있다

곰곰 생각해 보면 이게 무조건 어릴 때, 젊을 때 하라는 말이 아닌 것 같다.

자기가 내킬 때, 여건이 허락할 때, 그래서

“흔쾌히”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공부라는 뜻이 아닐까.


그런데 아쉽게도 박사과정은 사이버로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아직 없다.

할 수 없이 일반대학원으로 원서를 내고, 면접도 봤다.

다행히 면접은 온라인으로 진행이 되어,

마침 그때 제주도에 졸업 세미나를 간 상황에서도 호텔방에서 면접을 볼 수 있었다.


온라인 면접기

교수님께서는 나름 배려를 해 주신다고, 오후 1시 면접인데 오전 일정을 다 빼 주셨다.

“잘” 준비하라고.

면접하기 전 3시간, 무엇을 하면 좋을까?

호텔 방에 앉아서 줌이 켜진 노트북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딸아이의 흉내를 내 보기로 했다.


대학 졸업반인 딸아이는 한동안 매우 열심히 여기저기 인턴 지원을 했다.

다행히 서류 통과가 되면, 면접 준비를 했다.

좋은 배경을 찾아 아이패드를 카메라처럼 앞에 설치해 놓고,

학교 앞에서 일습으로 산 면접복이라는 것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는 진지하게 화면을 응시하며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더라고.


옳거니, 오늘 나의 젊은 경쟁자들(!)도

다들 이렇게 “준비”라는 것을 하고 있겠군.

그렇다면, 나도 이 “준비”를 한번 제대로 해 보리라.


게다가 줌에는 녹화 기능도 있어, 자기가 한 것을 볼 수도 있다.

무릇 대학원 질문이라는 게 뻔한 것이라,

지원동기, 학업 후 계획, 주관심 분야에 대한 질문이 있겠지.

약간 긴장되는 마음으로 첫 번째 녹화를 해서 돌려 보았다.

허걱.

녹화된 내 모습은, 길고 긴 직장 생활 경력이 무색할 정도로 어설퍼 보였다.

눈알을 왜 이리 좌우로 정신없이 굴리는 거야.

몇 개의 같은 단어를 계속 반복해서 말하고 있잖아.

오오, 경직되고 부담스러운 얼굴.

고쳐야 할 포인트들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이건 정말 첨단 기술의 박애주의적 혜택이군.
땡큐, 줌.


일부러 웃으면서, 눈알을 굴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단어를 좀 다양하게 써 가면서

몇 번을 반복 녹화하고 다시 보았다.


세 번이 넘어가니 확실히 좋아지는 게 보였다.

아 보람 있다.

단기 성과라는 게 이런 거지.


그리고, 마침내 한 시, 면접이 시작되었다.

정확히 한 시 일 분 전에 연결된 화면에는 세 명의 면접관이 앉아있었다.

반갑게 인사하고 본론으로 직행!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오 분.

이미 예상했던 질문 및 그에서 파생된 세부 질문 10여 개와, 나의 매우 잘 준비된 답변이

자연스럽게 전개되었다.

이제 거의 끝날 시간이군, 하고 숨을 돌리려는 순간,

질문을 거의 하지 않던 맨 왼쪽 편 교수님이 돌발 질문을 했다.


예상 못한 날카로운 질문

“지금까지 선생님이 해온 상품 마케팅과, 지원하신 관광마케팅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죠?"

오호, 좋은 질문인데?

질문을 한 교수님의 얼굴에서 왠지 뿌듯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런데, 나는 전혀 준비가 안 된 질문이었다.

머리가 하얘지면서 잠시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하지만 3초 후. 왠지 모르게 단전 아래쪽에서 힘이 올라오는 느낌.

그냥 평소 소신으로 가자.


차이는 뭔 차이,
세상이 다 마케팅 바닥으로 가고 있는데

 “요사이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고 말을 시작했다.


“디지털 시대가 되어 외국 제품들과 온라인상 품질과 가격이 바로 비교되고,

후기도 공유되면서 제품 마케팅이 글로벌 무한경쟁이 된 것처럼,

관광지들도 이제 온라인상에서 이야기가 될만한 콘텐츠의 파워 및 후기가 중요해지고,

전 세계 다른 나라들의 핫플과 직접 경쟁이 된다는 점에서는

점점 비슷해지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겠지?

질문자가 뭔가 제차 말하려 했지만,

다행히 가운데 앉은 주무 면접관이 시계를 가리키며 웃었다.

그리고, 훈훈한 마무리.


“그래요, 잘 알겠습니다.

연구 계획, 아까 말씀하셨던 거, 들어오시게 되면 열심히 해 보세요”라는 덕담.


휴, 끝났다.

그리고, 면접 후 한 달 지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합격이었다.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대부분 붙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으니

좀 싱거운 느낌도 들었지만.

어쨌든 도전은 도전이었고, 합격은 합격이었다.


면접 연습하느라 녹화한 비디오는 지우지 않았다.

한 10년 뒤에 보면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해서.


그리고, 그 마지막 질문은 나에게는 계속 좋은 화두가 되어 주었다.

한 달간의 간헐적 고민으로 지금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랜드마크 관광이 아니라, 일상 여행으로 관광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일상/현지 여행’의 컨셉은 결국 라이프스타일 체험으로 가고,

라이프스타일의 국면으로 가면

제품 마케팅에서 그렇게나 중요시하는 페르소나, 브랜딩의 문제가

여행 마케팅에서도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영역에서 나의 커리어 경험들이 인사이트로 작용하지 않을까.

아직은 뭔가 공부를 무지 잘 해낼 것 같은 꿈에 부풀어 있다.

막상 부딪히면 현실은 또 다르겠지만, 그래도 또 길은 생기겠지.

일단, 합격했으니

야호야호!!


온라인 면접, 최대한 밝게 인사하며 좋은 분위기로 시작하는 게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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