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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버들 Feb 01. 2024

[단편] 편지-2 : 사내선행대회 편지낭독-1


기자님들 안녕하세요. 저는 말주변이 없고 아직 어려, 회장님께 보내는 편지를 미리 적었습니다. 회장님의 베풂에 감사하며 쓴 편지입니다. 회장님도 언젠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잘 지내셨는지요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흘러서 어느덧 12월을 맞이하고 하고 있습니다. 날씨가 추운데 몸은 건강하신지, 여전히 당당하던 모습으로 살고 계신지, 그동안 저를 잊으신 건 아닌지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첫눈도 왔었지요. 온 세상이 모두 하얗게 뒤덮여있어서 맑아진 기분입니다.

차가운 공기를 마시면서 이곳저곳 다니며 여러 풍경을 보았으면 좋았을텐데 사정의 여의치 않아 창 밖으로 보는 게 전부네요. 창밖으로 간간이 지나가는 풍경에는 코트를 꽁꽁 여민 여자, 추운데 자존심 때문에 움츠리지도 못하는 그 어느 여자의 애인, 목도리며 찐빵모자며 누비로 된 겉옷을 입고 구부정 걷는 할머니, 내복이 손목 아래까지 내려온 꼬마아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손목을 잡고 바삐 걷는 아이의 엄마, 붕어빵을 굽는 아주머니, 그 바로 옆에서 군고구마를 팔고 있는 아저씨, 또 그 옆의 가판에서는 목도리나 장갑 스커프 따위를 파는 가판대의 젊은 청년도 있구요. 또 서로의 손을 붙잡고 지나가는 연인들, 교통지도를 하는 경찰아저씨, 거리에 간간이 내린 낙엽을 쓸어내는 청소부 아저씨, 어쩐지 알 수는 없지만 잰걸음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도 보이네요.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아직 물들지 않은 잎새 위로, 지지도 않은 잎새 위로, 조금은 앙상하기도 한 가지위로 내린 하얀 눈이에요.

모두들 눈이 좋다고들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하얗다는 이유로 그저 맑은 기분만 받을 뿐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그 눈이 저는 왠지 모르게 얄밉기만 합니다.

 

하필이면 준비도 안 된 물들지 않은 잎새 위로 내리지요. 참 냉정합니다. 그 잎새는 아직 포근한 날씨인 줄로만 알고 물들지 않았을텐데, 조금 더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희망이 있었을텐데, 가차 없이 눈은 그 위로 내려앉더군요. 그것도 살포시.

알지도 못하게 그 잎새를 차갑게 적시고 있더라구요. 그렇다고 물든 잎새 위에 내려앉지 않는 것은 또 아니더군요. 물들어가는 자신의 몸을 보면서 언제 땅 위로 떨어지려나하고 노심초사하는 물든 잎새 위에도 내리지요. 참 못됐습니다.

몇 해 전인가 어느 개그프로에서 유명한 코미디언이 했던 말처럼 그 잎새를 두 번이나 죽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심리적인 죽음과 실질적인 죽음으로 말이지요. 게다가 이미 잎새가 떨어진 나뭇가지 위에도 내려앉습니다. 이미 더 차가워질 것도 내버릴 것도 없는 그 가지 위에 앉더란말입니다. 참 잔인합니다. 그 가지는 축축이 젖어 마른 나뭇가지보다 선명하고 진한 색을 냅니다. 그 색을 보고 저는 나뭇가지의 눈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우습게 들리시겠지만 저도 모르게 그렇게 느끼게 되었네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이 눈물일지라도 하등 필요 없는 부질없는 짓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눈은 칭송받는 편이지요. 하얗고 목화솜같이 생겨서 차가움에도 불구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고요. 나중에 길을 질척거리게 만들고 얼음바닥을 만들어, 사고도 많이 생기게 하는데 그래도 눈은 환영받는 편이지요.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해놓고 외관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칭송을 받고 환영을 받는 눈이 저는 요즘 부쩍 얄밉고, 밉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저 익숙해서 원래 그러던 것으로 여기던 일들을 병상에 누워 떠올리니 원래 그런 일이란 없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회장님은 제 이런 생각을 조금은 이해해 주시겠지요? 아량이 넓고 멀리 보는 혜안과 마음을 가지고 계시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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