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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버들 Feb 01. 2024

[단편] 편지-4 : 사내선행대회 편지낭독-3


부모님과 저는 그 날부터 이 일을 알릴 수 있는 전단지를 만들어 지하철 역 주변과 버스정류장 근처에 가서 나누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단지를 거부하고, 받자마자 버리기도 했지만 가져가 읽어주는 분이 계셨는지 응원 문자도 몇 차례 받곤 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는 그 전단지를 읽고 ‘A기업을 망하게 하려는 술수냐! 나라 경제를 일으킨 기업이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하겠냐! 너무 청렴해도 이런 날파리들이 꼬인다’며 그 자리에서 전단지를 갈기갈기 찢어 제 얼굴이 뿌리기도 했고, 어떤 할아버지는 ‘별 미친것들이 설치고 다닌다’며 모욕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은 마치 나와 우리 부모님이 나쁜 일을 하는 악마처럼 느껴졌습니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데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걸까 스스로 의심하기가 끝이 없었습니다. 회장님도 제 얘기를 들으시면서 개탄하고 계시겠지요.

이쯤되니, 경찰의 행방이 궁금하실거예요. 회장님, 경찰들은 너무 바쁩니다. 전화를 해서 물으면 조사 중이다 기다려달라는 말로 우리 가족에게 희망을 주었고, 답답한 마음에 찾아가면 현장에 가는 중이라며 잽싸게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리곤 했습니다. 아마도 우리 오빠 사건을 조사하러 가는 것이었겠지요? 하지만 경찰들이 이렇게 바쁘게 뛰는데도 우리 오빠 얘기는 모두에게 잊혀져가는 것 같고, 저마저도 이제 집에 돌아가면 오빠가 없다는 게 점점 실감이 났습니다. 모두가 우리 가족을 위해 힘써주는 것 같은데도 지치고 좌절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제게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바로 그 때 우리 오빠에 대해 말해주던 친구들을 만나면 J친구에 대한 얘기를 듣고 경찰에 증거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그 사실을 말씀드렸고 내일 학교에 같이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얘기로 이제 오빠의 눈을 감겨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뜬 눈으로 밤을 새 다음 날이 되었고 우리는 오빠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담임선생님을 찾아가니 선생님은 그런 이유로 학생들을 만날 수 없다고 단칼에 잘랐습니다. 그 학생들도 친구를 잃은 상실감에 심신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가 다가가면 충격을 받을 거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잠깐이면 된다고 했지만 결국 오빠 친구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터덜터덜 교무실에서 나와 복도를 지나 우연히 오빠와 어울리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중에 얼굴이 낯익은 S오빠를 불렀습니다. S오빠는 그 친구들에게 우리 오빠 가족이라고 얘기하며 같이 다가왔습니다. S오빠는 죄송하다고 하면서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는 인사도 빼먹고 부모님이 말씀하시기도 전에 우리 오빠에게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오빠는 미안하단 말만 했습니다. 다른 오빠들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저는 그제야 예전엔 같이 다니던 5명 오빠 중에 2명이 없다는 걸 깨닫고 물었습니다. S오빠는 그 친구들은 전학 가서 이제 연락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마 그 오빠들은 이 학교에 우리 오빠가 없다는 게 슬퍼서 전학을 갔을 겁니다. 다른 오빠들은 그 때 얘기를 하자면 우리 오빠 생각이 계속 나서 슬플까봐 아무 얘기도 못하는 것 일거예요. 그 오빠들은 모두 착했으니까요. 학교에서 나와 전단지를 돌려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식구 모두는 그럴 힘이 전혀 없었기에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검은 양복의 아주 젠틀한 남자분이 서 계셨습니다. 나이는 40대 중반쯤 인 것 같았어요. 그 분은 그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직원으로 집으로 들어가 대화를 좀 할 수 있겠냐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승낙하셨고 저는 녹차티백을 우려서 그 젠틀한 남자분 앞에, 부모님 앞에 놓았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오열이라도 하며 그 남자분을 가만히 두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셨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진심인 사과를 바랐다고 얘기했지요. 하늘로 먼저 떠난 아들놈, 넋이라도 잘 달래주고자.

그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안해서였을까요? 알 수 없는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그 업체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사실 하나로 이제 뭔가 일이 제대로 잡혀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 오빠의 죽음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다고요, 경찰들이 조사를 끝낼 수 있다고, 왜 우리에게 미안해하는지 모를 사람들에게 사과를 듣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지요.

저는 엄마에게 이제 다 잘 될거야. 두 번 다시 오빠를 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다 잘 될거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던 아빠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순미야 당분간 고모네서 지내려무나. 엄마와 아빠는 할 일이 있으니 말이다. 전화해둘테니 지금 출발하라고요. 저는 고모 댁에 도착해 잠을 자려고 했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서 오늘 하루만 집에서 자고 오겠다고 고모께 인사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집 안에 계실 것 같아서 큰소리로 불러보았지만 대답도 부모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이미 연기가 자욱했고 저는 거기서 쓰러졌던 모양입니다.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방에 모든 불길이 올라와 있었고, 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어, 엄마만 애타게 찾았던 것 같습니다. 몇 번이나 엄마, 엄마하고 불렀을 때 대답이 어디선가 들려오긴 했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치솟은 불길에, 희뿌옇게 앞을 가리고 있는 연기 때문에 그 때 제가 서 있던 곳이 어딘지 조차 잘 몰랐지요. 기침이 자꾸만 났습니다. 그 때 다급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의 목소리였습니다. “순미야! 어서 나가! 어서 나가!” 저는 정신없이 출구만 찾아 헤맸습니다. 그 때 저는 집 밖으로 나가는 현관 앞까지 걸어갔는데 그 때 천정에 있던 뭔가가 제 오른쪽 몸을 누르며 저는 쓰러졌습니다. 애석하게도 그리고 난 후 또 기억이 없네요.

 

부모님은 안타깝게도 돌아가셨습니다. 가끔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났다가 또 부모님 몫만큼 오빠 몫만큼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운을 차리곤 하지요. 그래도 회장님의 금전적인 혜택과 격려와 진심이 아니었다면 제가 살아간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겠지요. 정말 나중에 한 번이라도 뵙고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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