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byunion Sep 19. 2022

개나 줘버릴

나는 우리 노조 조합원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다. 그냥 많은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엄마 나이에 가깝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젠더, 학력, 지역 갈등보다 더 강력한 게 세대 갈등이라고. 하지만 나는 잘 지내고 있다. 그것은 연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많고 다른 활동가들에 비해 경력도 많은 나는 여러 단체들을 전전하였지만 노조를 경험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공교롭게도 두 번 모두 노조 설립 멤버이다. 우리나라 시민단체 중 노동조합이 있는 곳은 드물다. 어쩐지 어색해 보이지 않는가. 한국의 노동조합 가입률이 저조한 것은 유명한 사실인데 시민단체 사정도 다르지 않다.   



유럽에서는 노동조합을 포함한 노동권에 대한 교육이 초등교육 필수 과정이고,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기본 교양이라고 한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교섭을 통해 평등하고 민주적인 논의 구조를 자연스럽게 익힌다고 들었다.   

  

10여 년 전이었나. 어느 공익인권 교육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강의를 하던 교수에게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질문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는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노조를 만들 필요가 없을 만큼 노동자들에게 충분히 보상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그 충분한 보상이란 게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생각도 못한 답변이었다. 그렇다면 시민단체는 노조를 만들 필요가 없을 만큼 활동가들의 권익을 존중하고 충분히 민주적인 조직 문화를 지니고 있는가.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시민단체를 표현하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인권단체에 인권 없고 복지단체에 복지 없고 노동단체에 노동만 있다’ 이것은 단체의 존립 가치가 단체 내 활동가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외부에는 진보적이고 민주적 사회를 요구하지만 내부에서는 활동가들 의견을 무시하고 인간적 존중 없이 함부로 대한다고. 활동가를 소모품처럼 여기고 소진시키는 일들이 얼마나 많으면 이런 말이 나왔을까. 세대를 넘어선 나와 우리 활동가들과의 연대 의식은 여기서부터 인 듯하다.      


많은 시민단체가 후원금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활동비를 마련하기 위한 자구책 마련이 매년 단체들의 고민거리가 되곤 한다. 그러다 보니 활동가 급여를 최저임금에 맞추지 못하는 단체도 많다. 인력 부족과 저임금, 현안에 딸려오는 업무처리들은 고강도 노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열정 페이를 받고 견디게 한다. 사회적 가치를 수행하는 당위적 의무가 우선이다 보니 개인적인 사정은 뒤로 밀리기 십상이다. 오죽하면 조선일보에서 2021년 1월 5일에 이런 기사를 실었겠는가. [급여 낮고 복지제도 전무… 장기근속할 수 없는 근무 환경] ​​  

조선일보의 기사 내용은 사실이고 실제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근속기간은 길지 않다.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활동가들이 일반 직장에서 기대되는 임금 수준과 복지 혜택을 희망하고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이 이곳에 들어오는 이유는 도덕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시민단체 이미지에 걸맞은 조직문화를 기대하고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실은 고강도 업무에 비해 임금은 턱없이 낮고 독단과 야만적인 조직 문화에 신물을 느끼고 나가곤 한다.      


활동가성 부족을 운운하며 시민단체를 떠나는 이들의 퇴사 이유를 활동가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진지하게 모두가 지속 가능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고민이 필요한 거다. 우리 단체가 요즘 관심 있어하는 숙의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공론장은 단체 내부에의 관계 설정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더 필요하다.


일단 고질적으로 자행해 왔던 직급 낮은 활동가를 잡부처럼 대하는 일부 권위적인 행태부터 버리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달 내내 개인적인 것인지 공적인 것인지 구분 안 되는 공금 사용 영수증을 월 말에 직급 낮은 활동가 책상 위에 수북이 던져주고 자신이 써야 할 지출결의서를 대신 작성하게 하는 업무지시 같은 거 말이다.      



또 과거 훈장들은 그만 말하자. “고연봉을 준다는 곳 여러 군데였는데 물리치고 여기 온 사람이 나야!!”라는 말 같은 것 말이다. 아무리 공감능력 떨어져도 그런 말이 설득력이 없다는 거 정도는 좀 깨닫자. 지금 모습에나 집중하시라.


하긴 올해 워크숍에서 누군가는 모두의 앞에서 이런 말도 하긴 했다. “과거에 어떠했다는 말은 개나 줘버리자!”


작가의 이전글 상상도 못한 거절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